중국의 기습적인 위안화 평가절하로 미국과 중국 간 통화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이는 내달로 예정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양국 간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다.
위안화 평가절하는 중국 제품의 수출경쟁력을 강화해 미국과의 무역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중국에 대한 만성적인 무역적자에 시달려 온 미국으로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위안화 평가절상 필요성을 강조해 왔는데 이번에 중국이 거꾸로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리면서 해묵은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중국의 이번 위안화 평가절하를 수출 확대를 위한 의도적 환율 조작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정치적 쟁점화는 시간문제로 보인다.
미국 여당 실세인 찰스 슈머 민주당 상원의원은 “중국은 수년간 규칙을 어기고 환율로 시장질서를 교란했으며 이 때문에 미국의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면서 “중국 정부는 이를 개선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미국 의회에서는 “중국이 내부 정치적 문제를 수출 드라이브를 통해 풀려고 하는 의도가 보인다”, “중국 정부의 위안화 평가절하 결정은 미국에 대해 무역전쟁을 선포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당장 내달 말로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에서 통화전쟁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내달 미국을 방문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미·중 간의 여러 현안을 원만히 해결할 계획이었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중국 해커의 미국 인사처 해킹 등의 문제를 놓고 양국 정상이 어느 정도 양보한다면 그간 불거졌던 미·중 갈등이 완화될 것으로 희망했다. 그러나 급작스런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로 인해 양국 정치권의 감정이 격화되면서 미·중 정상회담이 원만하게 진행되기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연내 금리인상을 준비해 온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새로운 과제를 떠안았다. 위안화 평가절하로 미국의 수출경쟁력이 약화된다면 예정대로 금리인상을 단행하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연준은 노동시장이 꾸준히 개선됨에 따라 물가상승률만 목표치에 근접한다면 금리를 인상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위안화 평가절하로 수출이 줄어들고 실업률이 높아진다면 인상계획은 재검토가 불가피하다.
뉴욕타임즈는 “최근 수년간 중국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이 줄어들고 위안화 환율이 절상되면서 갈등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으나 이번 위안화 평가절하로 논란에 다시 불이 붙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과 달리 미국 행정부는 일단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 재무부는 “중국이 시장환율제도에 한걸음 더 다가갔다”면서 “시장환율제도와 내수중심 경제로의 이행 등 개혁이 신속히 이뤄지도록 더욱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양국 정상회담 등을 앞두고 섣불리 중국 정부를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또 위안화 평가절하가 중국의 수출경쟁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지만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하기 위해 국제화를 추구하고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바스켓 편입을 추진하는 중국 정부로서는
IMF도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에 대해 “세계 금융시장이 빠르게 통합되고 시장의 역할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중국으로서는 환율 유연성을 키우는 문제가 중요하다”며 “환영할 만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 서울 = 김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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