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공식 선거일은 내년 12월 9일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인단을 뽑는 투표는 11월 8일이기때문에 사실상 11월 8일이 대선일이다.내년 2월 1일 아이오와주를 시작으로 6월 7일 캘리포니아주에 이르기까지 주별 경선을 거쳐 공화당과 민주당 공식 후보를 선출한다. 이중 가장 중요한 경선은 대선 풍향계로 불리는 2월 1일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와 2월 9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 그리고 13개주 경선이 몰려 있는 3월 1일 이른바 ‘수퍼 화요일’이다.
양당 후보가 결정되면 9월 26일, 10월 9일, 10월 19일 세 차례 대선후보 간 TV토론을 거쳐 11월 8일 사실상의 대선인 대통령 선거인단 선거를 치르게 된다. 선거인단 수는 총 538명. 하원의원 435명과 상원의원 100명에 워싱턴 D.C. 선거인단 3명을 합친 숫자다. 50개 주는 인구 비례에 따라 선거인단 수가 다르다. 한표라도 더 많이 얻은 후보가 그 주의 선거인단을 모두 차지하는 승자독식 형태다. 선거인단 수가 가장 많은 주는 54명의 캘리포니아이고 가장 적은 주는 버몬트, 델라웨어, 워싱턴 D.C.로 각 3명이다. 때문에 캘리포니아에서 박빙으로 이기더라도 버몬트 델라웨어 워싱턴D.C.에서 압승을 거두는것보다 훨씬 유리하다.
■늘어나는 히스패닉 표심은?
민주당 대선후보로는 여전히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유력하다.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미국 최초의 부부 대통령 탄생을 노리고 있다. 국무장관 시절 이메일 부정사용 논란과 벵가지 청문회 등으로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에게 추월을 허용하기도 했지만 최근 다시 뒤집었다.
공화당은 부동산 재벌이자 방송인 출신 도널드 트럼프와 세계최초로 샴 쌍둥이 분리 수술에 성공한 소아신경외과 의사 출신 벤 카슨이 엎치락뒷치락하며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이를 두고 기성 정치권에 실망한 여론이 이른바 ‘아웃사이더’를 지지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정통 정치인 중에는 마르코 루비오가 급부상 중이다. ‘막말’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트럼프나 유약한 이미지의 카슨으로는 본선에서 힐러리에게 이길 수 없다는 우려가 당내에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미국 내 히스패닉 인구가 증가추세에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히스패닉 인구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해왔다. 따라서 히스패닉 인구 증가는 공화당으로서는 악재다. 백인 중심주의 성향이 강한 트럼프의 본선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 미국 내 히스패닉 인구 비중은 1990년 9% 정도였지만 2000년 12.5%, 2010년 16.3%로 늘었고 지난 해에는 17.7%로 두배 가까이 급증했다. 유권자 수는 2520만명에 달한다. 때문에 쿠바 이민자 부모에게서 태어난 루비오의 경쟁력이 돋보이는 것이다. 초기에 유력주자로 부상했던 젭 부시 전 조지 부시 대통령 동생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힐러리 대항마로 꼽혔던 여성 후보 칼리 피오리나 전 휴렛패커드 회장도 맥을 못추고 있다.
■성폭행범 변호 등 잠복한 힐러리 변수
일찌감치 대세론을 굳혔다지만 힐러리에게도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우선 미국에서는 흔히 말하는 정권 재창출이 쉽지 않다. 관행적으로 민주당 다음에는 공화당이, 공화당 다음에는 민주당이 대권을 차지해왔다. 제2차 대전 이후 현직 대통령과 같은 당에서 대통령이 당선된 경우는 단 한 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이어 1988년 대선에서 조지 W.H. 부시 대통령이 당선된 것이 유일하다. 그나마 4년 단임으로 물러났다. 나머지는 모두 정권이 바뀌었다. 이같은 추세가 이어진다고 가정하면 민주당 소속 버락 오바마 대통령 후임으로 힐러리가 당선되는것 자체가 쉽지 않다. 한 가닥 희망이라면 오바마 대통령의 현재 지지율이 매우 높다는 것 정도다. 개인적인 약점도 적지 않다. 부정사용 의혹을 받고 있는 힐러리의 국무장관 시절 개인 이메일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힐러리의 발목을 잡을 악재다. 벵가지 사건 청문회를 무사히 넘겼다지만 완전히 면죄부를 받은 것은 아니다.
또 40년전 힐러리가 변호사 초년병이던 시절, 성폭행범 토머스 알프레드 테일러의 국선변호를 맡아 조사절차를 문제삼는 방식으로 종신형을 받아야 할 것을 1년형으로 감형해준 사실이 있다. 여기까지는 국선변호사로서의 당연한 임무로 볼 수 있다. 하지만 1980년 힐러리가 지역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 범행 사실을 알고 있었고 피해자 소녀를 공격함으로써 변호에 성공했다고 털어놓은 녹음 테이프가 최근에 공개돼 논란이 되고 있다.
힐러리가 국무장관을 지낸 시기에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받은 고액 강연료도 문제 소지가 다분하다. 클린턴 전대통령에게 지급된 강연료가 힐러리의 무언의 압력 내지는 국무장관으로서 갖는 파워에 대한 대가성 돈일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성폭행범 또는 바람둥이로 묘사하고 힐러리는 클린턴 전대통령 바람기를 뒤치닥거리하느라 관련 여성들을 찾아가 입막음을 했다는 내용을 폭로한 신간 서적 ‘클린턴의 여자들과의 전쟁(Clintons’ War on Women)’도 복병이다.
■대외정책보다는 총기규제가 분수령
내년 대선을 좌우할 주요정책 대결로는 총기규제, 이민개혁, 세제개혁 등을 꼽을 수 있다.
정책면에서 본다면 중동정책이나 동아시아정책 등 대외정책이 무게감이 더 나가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출범을 판가름할 자유무역에 대한 의지, 기후변화 대책 등이 훨씬 중요하다. 하지만 유권자들 입장에서 중동정책이나 기후변화 등은 피부로 체감하기 힘든 이슈들이다. 자유무역이나 금융개혁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갈수록 늘어가는 총기 사고 예방을 위한 총기규제가 유권자들에게 더 큰 문제다. 사냥과 사격 등이 레저의 한 축으로 자리잡고 있는 버몬트, 콜로라도 같은 주에서 총기규제는 지역 경제에 치명적이다. 이에 비해 인구가 밀집한 도시지역은 신변 안전과 범죄 예방, 자녀 안전 등을 감안해 총기규제에 절대적으로 찬성한다. 특히 민주당은 강한 총기규제를, 공화당은 현상 유지를 주장하며 맞서고 있어 선거에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이민개혁도 공화당과 민주당이 팽팽히 맞서는 부분인데다 유권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슈라는 점에서 중요하다.이민개혁 문제는 백인과 히스패닉 주민간 세력규합을 촉발시키는 휘발성이 큰 사안이라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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