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테러 충격파가 글로벌 주식, 외환, 원자재 시장을 덮쳤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그동안 미국 금리인상 가능성과 중국 등 글로벌 경기 부진으로 불안한 행보를 이어왔다. 그런데 파리 테러로 유럽 경제가 추가적인 타격을 받게됐다. 게다가 추가 테러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는데다 테러를 자행한 이슬람국가(IS)에 대한 서방국가들의 군사적 대응이 이어지면서 유럽·중동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고조돼 당분간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 치솟을 것이라는게 월가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처럼 시장 불확실성이 확산되면서 당분간 주식 등 위험자산보다는 달러, 엔화와 같은 전통적인 안전자산으로 글로벌 유동성이 이동하면서 달러·엔화 표시국채로 자금이 유입될 전망이다. 호주 페어몬트증권의 마이클 게이블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을 쫓아 재빨리 이동할 것”이라며 “단기적으로 달러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보인다”고 말했다. 분더리히 증권의 아트 호건 주식 전략가도 “테러가 발생하면 불안 심리가 높아지면서 투자자들이 일단 안전자산으로 몰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때 신흥시장에서 달러 뭉칫돈이 빠져나가면서 특히 신흥국 주식·채권시장이 타격을 받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실제로 16일 파리 테러 후폭풍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한 행보를 보이면서 한국, 중국, 대만, 홍콩, 호주 등 아시아 증시는 장 초반부터 일제히 휘청거렸다. 달러화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달러대비 신흥국 통화가치는 줄줄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위험을 회피하는 흐름이 강화되면서 안전자산인 달러값이 당분간 강세를 이어갈 수 밖에 없다는 전망이 확산되면서 대부분 달러로 결제하는 원자재 시장은 직격탄을 맞았다. 파리 테러 여파로 내수가 쪼그라들면서 유럽경제 둔화가 가속화되고 국경 통제·보안검색 강화로 국제교역까지 움츠러들것이라는 비관론이 확산된점도 원자재 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원자재 수요감소로 연결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줄어들면 원유 수요 감소로 이어져 국제유가를 심리적 지지선인 배럴당 40달러 아래로 끌어내릴 수 있다. 지난 13일 뉴욕 선물시장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한 때 배럴당 40.22달러까지 하락했다. 중국발 경기 둔화로 가뜩이나 얼어붙은 원자재 시장에 파리 테러는 또다른 메가톤급 악재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원유 등 주요 원자재 가격 흐름을 보여주는 로이터 코어 원자재(CRB) 지수는 13일 184.77을 기록해 2002년 12월 이후 13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원자재가격 추락은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는 자원 신흥국에서 자본 유출을 가속화시키고 경제 위기를 재촉할 수 있다. 9.11테러 발생했던 지난 2001년에도 전세계 교역이 2% 감소한 바 있다.
파리 테러는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 내수경기에 상당한 악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지난 금요일 연쇄 테러 이후 파리의 수많은 레스토랑과 상점들이 주말에 영업을 접었다. 이는 지난 1월 샤를리 에브도 테러 때보다도 훨씬 움츠러든 모습이다. 지난 1월 벌어진 테러가 특정 언론을 겨냥한 것이라면 이번 테러는 프랑스 전체를 조준했다는 점에서 충격의 크기가 다르다고 현지 관계자들은 전했다. 알렉산더 바라데즈 IG프랑스 애널리스트는 로이터와 인터뷰하면서 “소비재와 관광 관련 주식, 특히 고급 소비재 관련 주식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투자자들은 테러 충격의 여파가 가시기 전까지 관망세를 유지할 공산이 크다”고 진단했다.
유럽, 미국, 아시아 항공업체들의 주가도 자유롭지 못하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수석 경제고문은 “이번 테러가 프랑스 GDP를 단기적으로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주식시장이 위축되고 유로화 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연간 8000만명이 넘는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프랑스의 관광 수입은 프랑스 국내총생산(GDP)의 7.5% 가량을 차지한다. 테러 충격에 휩싸인 프랑스 경제가 4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에 빠져들수도 있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파리 테러 여파가 단기적 충격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샘 스토벌 S&P캐피털의 자산전략가는 “단기적으로 미국 주식이 2% 정도, 유럽 주식은 더 큰 낙폭을 보일 가능성이 있지만 유럽 경제를 대침체에 빠뜨릴만한 사건까지는 아니다”
[뉴욕 = 황인혁 특파원 / 서울 = 문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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