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과 기행의 정치인 로드리고 두테르테(71·사진) 다바오시 시장이 9일 치러진 필리핀 대선에서 승리한 뒤 나라 안팎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중앙 정치무대 경험이 없고 필리핀 정계를 쥐락펴락해 온 유력 정치가문 출신도 아닌 ‘아웃사이더’가 어디로 튈 지 모른다는 걱정때문이다. 정치적 기반이 약하기 때문에 각종 정책 입안·추진 과정에서 기득권층과의 마찰은 어쩔수 없다지만 과연 그가 임기 6년의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제도권내 과정을 중요시하는 타협·설득의 정치’를 펼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두테르테를 대통령 자리에 올려놓은 대표적 공약인 ‘범죄·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독재와 공포정치’가 부활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다바오시 시장 시절 사법절차를 무시하고 실질적인 범죄자 암살조직이나 마찬가지인 자경단을 비밀리에 운영하며 범죄자를 처형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법과 인권을 무시하는 행보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때문에 국내외 언론들은 “두테르테 당선으로 필리핀 정치·사회·외교정책이 시계제로 상황에 빠져들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주한 필리핀 대사관 관계자는 매일경제와의 통화에서 “로열 패밀리 출신도 아니고, 막말을 쏟아내는 두테르테 당선자를 외국은 물론 국내에서 누가 지원해줄 수 있을 지 걱정”이라며 “변화를 갈망하는 서민들의 선택을 받았지만 다바오 시장직과 대통령직은 염연히 달라 자칫 국내외 정치 무대에서 ‘왕따’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커다란 걱정은 두테르테 당선자가 범죄척결만 내세웠을뿐 앞으로 필리핀을 어떻게 개혁해 나갈지에 대한 큰그림을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취임 6개월 안에 범죄 근절’이라는 공약만 해도 그렇다. 자신이 22년간 시장으로 재직한 다바오시를 범죄가 들끓는 도시에서 필리핀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로 탈바꿈시킨 경험을 국정에 적용하겠다는게 그의 구상이지만 대통령 자격으로 과거처럼 초법적인 범죄 척결에 나서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두테르테가 선거 기간중 강조한 “범죄자들의 시신으로 마닐라만 물고기들의 배를 채우겠다”라는 살벌한 공약을 실제로 실행에 옮긴다면 인권단체들과 국제사회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거친 언행과 직설적인 화법을 자제하지 못하면 불필요한 외교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 마테르테는 유세기간중 과거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피살된 호주 여성을 성적으로 비하하는 발언을 해 호주와 미국 대사의 비판을 받자 “입을 닥쳐라”며 외교관계 단절까지 거론할 정도로 ‘감정적이고 아마추어적인 정치인’모습을 여실히 드러낸 바 있다. 두테르테는 발언 파장이 커지자 “내정에 간섭하지 말 것을 경고했을 뿐 외교관계 단절 발언은 와전됐다”고 해명했지만 막말과 기행의 정치인 두테르테 시장을 바라보는 국제사회 시선은 싸늘하다. 또 두테르테 시장은 갑작스레 10일 의원내각제와 연방제를 도입하기 위한 헌법개정을 추진하겠다는 뜻까지 밝혀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현지 ABS-CBN 방송에 따르면 두테르테 시장측 피터 라비냐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대통령제 실패를 목도해 왔다”며 “대대적 개헌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취임 6개월 이내에 제헌협의회 구성원 선출을 국회에 요청하고, 2019년 중간선거에서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6년 대통령 단임제를 폐지하고 의원내각제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외교정책과 관련,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필리핀내 반중정서가 강한데다 군사·경제적으로 미국 지원이 절실하기때문에 두테르테 당선자가 ‘친미, 반중’ 기조를 유지하겠지만 좌충우돌하는 그의 성향으로 인해 오해를 부를만한 이벤트가 발생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평가다. 대선초반 두테르테는 “지금까지 진행된 남중국해 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회의는 별 실익이 없었다”며 중국과 직접 대화를 하겠다는 뜻을 공공연하게 내비쳤다. 하지만 대선전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갑작스레 다자회의쪽에 무게중심을 두는 모습을 보였고 10일 “남중국해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 미국, 일본 그리고 다른 당사국이 참가하는 다자회의를 열자”고 제안했다.
두테르테 집권후 필리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필리핀 경제에 악재로 작용할 개연성도 크다. IHS 글로벌 인사이트의 라지브 비즈와즈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구체적인 경제 정책 콘텐츠가 부족해 경제 불확실성이 높다”며 “외국 투자자들이 필리핀 주식, 채권 비중을 낮출 수 있어 화폐, 주가에 악영향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두테르테 시장은 새정부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높아지는 불안감을 의식한 듯 대선 투표가 끝
[장용승 아시아순회특파원 / 문수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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