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이 반드시 미국의 다음 대통령이 돼야 합니다.”
25일(현지시간) 필라델피아 웰스파고센터에서 개막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경선 경쟁자였던 버니 샌더스 버몬트 상원의원이 힐러리에게 ‘화끈한’ 지지를 보냈다. 전당대회 개막을 앞두고 민주당 전국위원회(DNC)가 샌더스를 음해한 이메일이 폭로되면서 양측간 갈등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샌더스는 깔끔하게 경선결과를 승복했다.
대회장 곳곳에서 “힐러리 절대반대(Never Hillary)” “버니 아니면 꽝(Bernie or Bust)”을 연호하는 함성이 터져나왔지만 샌더스는 “(경선 결과에) 나 만큼 실망한 사람이 있나요”라며 자제를 당부했다. 샌더스는 “힐러리는 건강보험 개혁을 이끌었고, 아동 권리를 옹호했다”며 “1%가 아닌 모두를 위한 미국을 만드는데 트럼프보다는 힐러리가 적임자”라고 설득했다.
샌더스의 격정적인 30분간의 연설이 이어지면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비롯한 힐러리 지지자들은 박수로 응답했다.
샌더스에 앞서 등장한 미셸 오바마 여사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맡길 대통령의 자격이 있는 사람은 오직 힐러리 클린턴 뿐이라고 생각한다”며 통합과 지지를 호소했다. 미셸 여사에 이어 등장한 진보의 아이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트럼프는) 많은 유산을 받아 주변 사람들을 속이며 재산을 불린 인물로 평생 누군가를 위해 희생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이날 찬조연설에 앞서 샌더스의 영향을 받은 역대 가장 진보적인 정강을 공식 채택했다. 샌더스 공약이었던 최저임금 15달러 인상을 비롯해 사형제 폐지, 월가 개혁 등의 내용이 담겼다. 부자증세와 기후변화 대책 강화, 월가와 워싱턴의 회전문 인사 금지 등의 내용도 포함했다. 오바마케어를 계승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으며 낙태 관련 여성의 권리 보호와 총기규제 강화 방침도 명시했다.
보호무역 기조가 뚜렷해진 것도 샌더스 입김이 컸다. 정강은 지난 30여년간 미국이 체결한 무역협정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진단하고 “앞으로는 노동자의 권리와 환경, 공공보건을 보호하는 원칙에 부합하는 무역협상만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을 겨냥해 “환율조작국에 대한 책임을 물리고 불공정 무역에 대해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불공정 무역 관행으로는 덤핑 판매, 국영기업 보조금, 인위적 통화 평가절하 등을 적시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규정도 반대 입장을 밝힌 샌더스를 의식해서인지 초안보다 내용이 줄었다.
글로벌 위협과 관련해 테러와 사이버 위협,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란 북한 러시아 5개국을 지목했다. 특히 북한을 ‘가학적 독재자(sadistic dictator)가 지배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억압적인 정권’이라고 규정했다. 또 북한 정권이 북한 주민들에 대한 중대한 인권유린에 책임이 있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북한 인권문제를 정강에 담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핵·미사일 개발을 지속하는 북한과 중국에 대한 압박을 고조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또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역내 동맹과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샌더스와 힐러리 진영의 통합 노력에도 불구하고 샌더스 지지자 중 일부는 여전히 힐러리 지지를 거부하고 있어 힐러리 캠프의 숙제로 남았다. 특히 경쟁자인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지지율이 급등한 것도 힐러리 진영의 악재로 떠올랐다.
이날 오전 발표된 CNN과 ORC의 22~24일 공동 여론조사 결과, 트럼프 지지율이 48%, 힐러리는 45%로 나타났다. CBS뉴스가 같은 기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트럼프 44%, 힐러리 43%로 트럼프가 앞섰다. 이는 공화당 전당대회 직전에 비해 트럼프에 대한 전국 지지율이 5~6%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전당대회 효과가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전당대회 이전인 지난 17일 CNN과 ORC 공동조사에서는 힐러리 49%, 트럼프 42%였다.
한편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논란을 일으켰던 전국위원회 이메일 해킹의 배후를 러시아로 지목하고 미국 연방수사국(FBI
[필라델피아 = 이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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