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람베'를 그만 괴롭혀달라" 수단이 되버린 고릴라
↑ 사진=연합뉴스 |
뉴질랜드의 고등학생 핀 캐터웨이는 지난 8일 친구들과 함께 지방신문이 주최하는 퀴즈 대회에 출전해 우승했습니다. 우승 후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승리를 '하람베'에게 돌렸습니다.
미국 미시간 주에 사는 여고생 4명은 자신들의 학생증에 각각 '하' '람' '베'라는 글자와 '1999-2016'이라는 생몰 연도를 합성해 넣었습니다. 이어 붙인 학생증 4장의 사진을 최근 트위터에 올린 여학생들은 '하람베는 살아있다'는 메시지를 함께 적었습니다.
미국 온라인매체 매셔블이 소개한 이들 사연에서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기린 '하람베'는 바로 지난 5월 미국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의 한 동물원에서 총에 맞고 죽은 수컷 롤런드 고릴라입니다.
고릴라 우리에 떨어진 4살 남자아이를 구하기 위해 동물원 관계자가 하람베를 실탄으로 사살한 지 4개월가량이 지났으나 인터넷에서, 그리고 10대들 사이에서 하람베는 '불멸의 존재'가 됐습니다.
처음 사건이 발생했을 때 멸종 위기인 롤런드 고릴라가 불의의 사고로 그야말로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다는 것에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동물원에는 추모의 발길이 이어졌고, 아이가 우리에 떨어지도록 방치한 부모나 성급히 사살을 결정한 동물원 관계자 등에게 책임을 물어 '하람베를 위한 정의'를 실현하라는 목소리도 온·오프라인에서 커졌습니다.
그러나 사건 정황상 부모나 동물원 관계자에게 딱히 책임을 묻기 힘든 상황이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하람베라는 이름은 단순히 추모나 동물보호의 메시지 이상을 담게 됐습니다.
하람베는 우리의 '짤방'과 비슷한 개념인 '밈'(meme·인터넷상의 재미있는 이미지)의 단골 소재가 됐고, 온갖 순간에 맥락 없이 등장했습니다.
미국의 여론조사업체인 퍼블릭 폴리시 폴링은 지난달 텍사스 주 대선 후보 지지율을 조사하며 하람베를 포함시켰고, 하람베는 녹색당 질 스타인 후보와 비슷한 2%의 지지율을 얻었습니다.
허리케인 '허민'의 이름이 너무 끔찍하니 하람베로 바꾸자는 온라인 청원이 개설돼 4천 명 이상의 지지를 받는가 하면, 멀리 호주의 놀이공원 새 워터 슬라이드의 이름 공모에서도 '하람베'가 가장 많은 표를 받아 채택됐습니다.
하람베가 단순히 인터넷상 '놀이' 소재가 된 것을 넘어 때로는 타인을 조롱하거나 모욕하는 수단으로도 사용되자 신시내티 동물원 측이 나서서 "하람베를 그만 괴롭혀달라"고 호소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러한 '하람베 현상'을 두고 미국 월간지 애틀랜틱은 최근 '하람베는 어떻게 완벽한 밈이 되었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디어는 메시지'라는 언론학자 마셜 매클루언의 말을 뒤집어 '하람베는 미디어가 된 메시지'라고 표현하
지난해 미국인 의사가 짐바브웨 국민사자 세실을 도륙한 사건과 달리 하람베 사건의 경우 뚜렷한 선악구도도, 교훈도 없는 사건이다 보니 점점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희미해졌고 결국 하람베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의미하는" 수단이 돼 버렸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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