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기업의 해외 진출에 간섭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이번엔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멕시코 공장 건설 계획을 비판하고 나섰다. 트럼프가 외국계 기업에까지 간섭하고 나서면서 멕시코에 공장을 갖고 있는 기아차 등 한국기업들도 영향을 받지 않을까 염려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는 5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도요타가 멕시코 바하지역에 미국 수출용 코롤라 승용차 공장을 건설하려 한다"며 "절대 안 된다! 미국에 공장을 짓든가 그렇지 않으면 막대한 국경세를 내라"고 밝혔다. 코롤라는 도요타의 소형 세단 승용차 모델이다.
이같은 트럼프의 발언은 해외 기업이 외국에 공장을 건설하는 계획까지 간섭하고 나서는 것이라 논란이 예상된다. 또 국경세를 부가가치세 등의 간접세로만 제한한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정에도 위반되는 발언일 가능성이 있다.
도요타의 멕시코 신공장 건설 계획은 지난 2015년 4월 발표된 것이다. 당시 도요타는 약 10억 달러(약 1조1800억원)를 투자해 멕시코 과나후아토주에 신공장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도요타는 공장이 완공되는 2019년부터 이곳에서 연간 20만대를 생산할 예정이다.
트럼프의 이같은 발언은 5일 일본 도쿄에서 자동차업계 신년하례식에 참석한 도요타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최고경영자(CEO)가 "멕시코 공장 설립 예정에 변경은 없다"는 입장을 밝힌 지 수 시간 후 나왔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도요타 CEO는 최근 트럼프의 잇따른 기업 때리기에 관한 질문을 받고 "이미 계획을 추진한 이상 회사는 지역사회와 고용에 대한 책임이 있다"며 계획대로 밀고 갈 것이란 의사를 드러냈다.
이미 멕시코 공장에서 차량을 생산 중인 혼다의 하치고 다카히로 사장도 도요타 사장의 발언에 뒤이어 "당장 멕시코에서의 생산을 재검토할 예정은 없다"고 밝혔다. 하치고 사장은 이어 "(트럼프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유지하길 바라지만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도요타는 트럼프의 발언 직후 성명을 내고 "멕시코 공장은 미국에서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만드는 것"이라며 "(도요타의) 멕시코 투자로 미국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아울러 "도요타는 미국 내 10개 공장에 13만6천명의 종업원이 있는 만큼 트럼프 정권과의 협력을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의 발언 이후 도요타의 주가는 급락을 면치 못했다. 6일 오후 1시 기준 도쿄증시에서 도요타 주가는 전날 대비 147엔 하락한 6902엔을 기록했다. 오전 한때는 3.1% 급락해 2개월만의 최대 하락폭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 여파로 혼다·닛산·마쓰다 등 다른 일본 자동차 생산업체의 주가도 2~4% 가량 동반 하락세를 겪었다.
한국의 자동차기업들도 트럼프 압박의 영향권에 들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는 5일자 칼럼에서 "한국 자동차 산업도 이제 관세 리스크가 더 해질 우려가 있다"며 30억 달러(3조6000억원)가 투자된 기아자동차의 신 공장이 트럼프 당선 2개월 전 문을 열었으나 이 공장은 미국이 아닌 멕시코에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지난해 9월 멕시코 공장을 준공한 기아차는 현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기아차는 멕시코 누에보 레온주 공장에서 지난해 말까지 10만대를 생산하고, 향후 연간 40만대까지 생산량을 늘려나갈 계획이었다. 실제로 기아차가 지난해 5~12월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한 K3 10만여대 중 60%인 6만여대가 미국에 수출됐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아차 관계자는 "우리쪽에도 압박이 들어오지 않을지 주시하고 있다"며 "다만,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된
미국우선주의에 기반한 트럼프의 기업 때리기는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다. 미국 에어컨 제조업체인 캐리어와 자동차업체 포드는 트럼프의 압박에 못 이겨 멕시코 공장이전 계획을 최근 포기한 바 있다.
[박창영 기자 / 안정훈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