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강경 보호무역주의자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이 삼성과 LG의 대미 관세회피 행위를 정면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트럼프 통상라인의 주요축을 이루는 나바로 위원장이 공개석상에서 한국 기업을 비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바로 위원장은 6일 전국기업경제협회(NABE) 총회 연설에서 "LG와 삼성이 덤핑관세 확정 판정을 받은 이후 미국의 관세를 회피하기 위해 중국에서 베트남과 태국으로 생산지를 옮겨다녔다"며 "이는 명백한 무역 부정행위(trade cheating)이므로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같은 발언은 자국 가전업체인 월풀을 거론하면서 불거졌다. 미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올해 1월 중국에서 생산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가정용 세탁기가 미국시장에서 불공정하게 판매됐다면서 각각 52.51%와 32.12%의 반덤핑관세를 부과했다. 월풀의 제소에 따른 결정이었다. 삼성과 LG는 미국의 관세 폭탄을 피하기 위해 베트남과 태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겼고 나바로 위원장이 이를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이런 행위는 수천명의 미국인을 실업자의 대열에 서게 하고 월풀과 같은 기업들이 수백만달러의 손실을 보게 했다"며 "국제질서 기반을 심각하게 약화시킨다"고 성토했다.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지난해 277억달러(약 32조원)로 미국의 무역상대국 중 8위에 해당한다.
나바로 위원장은 이날 "핵심 정책 목표는 무역적자 감축"이라며 미국이 현명한 협상으로 무역적자를 줄일 수 있다면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국가 안보를 제고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주요 무역상대국들이 미국 기업과 기술, 농지와 식품공급체계를 사들여 안보와 산업 기반을 제어하게 된다고 가정하면 경제와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경고다. 그는 중국 등 무역상대국들이 수출로 거둔 이익을 활용해 미국 기업과 기술을 사들이고 미국의 자립도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나바로 위원장은 또 "단순히 외국산 부품을 국내에서 조립하는 대신 더 많은 기업들이 부품을 미국 내에서 생산하거나 조달하도록 장려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평평한 운동장'이었다면 유지하고 있었을 미국의 공급망과 제조능력을 복원하는게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목표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나바로 위원장의 이날 발언이 나오자 통상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즉각 의도 파악에 나섰다. 산업부 관계자는 "나바로 위원장이 공개석상에서 한국 기업을 직접 거명한 것이기 때문에 발언의 의미를 파악하고 있는 중"이라며 "1일(현지시간)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무역정책 보고서에 이어 '무역적자 축소'라는 원칙론에 입각해 발언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이인호 산업부 통상차관보는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정책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철저히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주형환 산업부 장관은 이번 주 미국 방문에서 윌버 로스 상무장관을 비롯한 미국 신정부 주요 인사들과 만나 통상·협력 채널을 구축하고 한미 협력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생산기지 전략에 따라 생산지역을 조정하는 것은 이익을 높이기 위한 기업의 기본적인 경영 전략이라는 입장이다. 또 최근 삼성과 LG는 미국과의 무역마찰을 줄이기 위해 미국 내 가전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LG전자는 미국 테네시주 클라크스빌에 세탁기 공장을 신설하기로 했고, 삼성전자는 올 상반기 중 미국 내 부지선정 작업을 완료할 방침이다.
한편 나바로 위원장의 공격은 한국에만 그친게 아니다. 중국, 일본, 독일, 멕시코, 아일랜드, 베트남, 이탈리아 등 미국의 무역적자 문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16개국을 일일이 지목했다. 그는 특히 독일에 대해서도 날선 발언을 이어갔다. 나바로 위원장은 "독일에 대한 무역적자는 미국이 다뤄야할 무역적자 문제 중 가장 힘든게 될 것"이라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곧 미국
[뉴욕 = 황인혁 특파원 / 서울 = 고재만 기자 / 이동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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