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북한을 두둔하며 뒷배 역할을 하던 중국이 미국의 압박과 북한의 반발 사이에 끼어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미국은 중국에게 "아직 충분한 역할을 하지 않다"고 연일 압박하지만, 북한은 중국을 비웃기라도 하듯 연일 강경발언을 쏟아내 중국의 대북 억지력이 시험대에 서게 됐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17일 중국을 향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대북 압박 조치를 거듭 촉구했다. 한국을 2박3일로 방문했던 펜스 부통령은 이날 판문점에서 CNN과 한 인터뷰를 통해 "북한의 핵무기 실험과 최근 탄도 미사일 발사는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가 실패했음을 확인해준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실패한 전략적 인내 정책을 폐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북한에 대한 외교적 경제적 압박을 배가할 것"이라며 "중국이 북한을 압박하는 몇 가지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지만, 더 많은 행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같은날 북한은 정면으로 강경대응 방침을 쏟아냈다. 한성렬 외무성 부상과 김인룡 유엔 주재 북한 차석대사는 이날 미국에 들으라는 듯 '전쟁 불사'의지와 미사일 추가 발사 계획을 천명했다.
중국은 다급해졌다. 왕이 외교부장은 이날 밤 보리스 존슨 영국 외무장관과 전화통화를 가졌다. 중국 외교부는 "시리아와 한반도 문제를 협의했다"고만 밝히고 통화내용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북핵문제의 출구전략을 집중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주 장마르크 에로 프랑스 외무장관과의 회담 및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과의 통화에 이어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P5) 외교수장과 연쇄접촉에 나선 것은 중국이 그만큼 한반도 문제를 급박하게 있음을 드러낸다. 최근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플로리다 정상회담과 뒤이은 전화통화에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중국의 대북 압박 역할을 수용했다. 지난 20년간 이어져온 북핵문제에서 중국이 가장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최근 관영매체에서 북한에 대한 석유공급 중단을 언급하고 나선 것도 이런 변화를 상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꿈쩍 않고, 미국의 압박이 계속됨에 따라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거품이 빠지면서 밑천을 드러낼 위기에 처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는 17일(현지시간) '너덜너덜해진 중국의 한반도 정책'이라는 기사에서 "중국은 북한에 핵 포기를 압박하고 남한에 사드 배치 포기를 종용했지만 어느 쪽으로부터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 북한산 석탄 수입 중단조치를 내렸으나 북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16일 탄도미사일 발사를 감행해 중국에 굴욕을 안겼다. 한국에 대해서도 사드 배치를 저지하기 위해 강력한 경제적 보복조치를 단행했으나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17일 만나 조속한 사드 배치 의지를 다졌다. 이로 인해 중국의 한반도 정책이 엉망진창이 됐다는 것이 WP의 진단이다. WP는 특히 김정은 위원장이 권좌에 오른 뒤 한번도 중국을 방문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중국과 북한의 대화채널이 지극히 협소해졌다고 지적했다.
이런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적인 압박도 중국의 스트레스를 가중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일 "중국만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해 핵포기로 이끌 수 있다"고 주장하고 북한에 대한 군사적 조치까지 거론하며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한반도 현상 유지를 목표로 하는 중국으로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란한 지경에 빠져있다.
공산당 산하 반관영매체 환구시보는 18일 다시 사설을 통해 북한을 압박했다. 신문은 "중국은 대북제재의 강도를 강화하는 것뿐 아니라 북한이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고 새로운 도발을 감행한다면 더 강한 제재를 가할 것"이라며 "(중국과 미국이)북핵 문제를 무기한으로 끌고 갈 가능성은 급격히 감소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북한의 핵, 미사일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원유 공급 중단 등 북한 경제에 타격을 줄 강력한 수단과 미국의 대북 금융봉쇄 조치에도 동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트럼프 미국 행정부에 대해서도 불만을 쏟아냈다. 인민일보는 이날 모바일판을 통해 "트럼프가 '4월 위기설'을 조성해 한국 대선 후보들이 사드 배치에 동조하도록 만들었다"면서 "트럼프는 적어도 한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 베이징 = 박만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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