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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현지시간) 미시시피 유세 차 백악관을 떠나면서 `스페인 제재설`에 대해 언급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 쪽), 오는 10일 총선을 앞두고 유세에 나선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출처 = AP·스페인 총선 유세 영상 편집] |
이 소식은 스페인 총선이 불과 1주일 여 남은 시점에 전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미시시피 주 선거유세를 위해 백악관을 떠나면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 정부가 스페인을 제재할 것이라는 게 사실인가'라고 묻자 "지켜보겠다. 두고 보자"고 답해 제재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고 스페인ABC신문이 이날 전했다. 같은 날 '트럼프 최측근'으로 통하는 캘리앤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은 "트럼프 대통령과 스페인 건을 두고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대통령은 필요하다싶으면 거리낌없이 제재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는 호세프 보렐 스페인 외무부 장관이 이날 "백악관과 미국 국무부, 마드리드 주재 미 대사관과 접촉한 결과 미국은 어떤 형태로든 스페인을 제재할 계획이 없다"고 말한 것과 다른 내용이다. 이날은 보렐 장관이 유럽연합(EU) 외교·안보고위대표 임기를 시작하는 날이기도 하다.
갑작스럽게 나온 '스페인 경제 제재설'은 지난 10월 31일 블룸버그통신 보도가 시초였다. 통신은 트럼프 정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미국 재무부는 '스페인 중앙은행과 시중 주요 은행이 베네수엘라 중앙은행 등과 거래해 마두로 정권 자금 융통을 도왔다'는 이유로 스페인에 대한 경제 제재를 검토 중이며 제재는 스페인 총선(11월 10일) 이후에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ABC신문은 백악관에 '블룸버그가 보도한 스페인 제재설을 부인할 수 있나'고 이메일로 문의했지만 백악관이 답하지 않았다고 2일 전했다. 대신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명령에 근거해 미국은 마두로 정권과 관계된 것들을 조사하고 추적할 것이며, 국제 금융계도 미국 발 제재 위험을 염두에 둬야할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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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은 `니콜라스 마두로(오른쪽) 정권 돈줄 조이기`일환으로 올해 1월부터 베네수엘라 국영석유사 PDVSA를 시작으로 베네수엘라 개발은행과 중앙은행, 100여개 기관과 핵심 인물들에 대해 제재 조치를 해왔다. [출처 = AP 사진 편집] |
다만 8월 '엠바고급 제재' 이전의 제재는 미국 내에 한정됐지만 8월 제재에 따르면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도 가능하다. 세컨더리 보이콧은 제재 국가와 거래하는 제3국 정부뿐 아니라 민간 기업·금융기관·개인까지 제재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제3국이 제재에 동의했는지와 상관없이 제재를 발령한 국가(미국)가 일방적으로 결정한다.
미국 재무부가 스페인 제재를 검토한 이유는 마두로 정권의 스페인 내 금융거래를 동결하라는 최근 미국 요구를 스페인 정부가 거절했기 때문이다. 스페인 중앙은행과 정부는 자국 은행 계좌에 예치된 베네수엘라 측 자금이 과거에 비해 적고 최근 몇 년 간 별다른 활동 변화가 없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미국은 자국 금융기관이 마두로 정권과의 거래를 하지 않자 마두로 정권이 베네수엘라·스페인 중앙은행 간 거래를 통해 해외로 돈을 이체하거나 송금받는다는 주장이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미국은 스페인 사회주의 정부가 중국과 러시아 못지 않게 마두로 정권에 힘을 보태고 있다고 보고 있다. 또 스페인에 경제 제재를 하면 EU에 대해서도 강력한 메시지가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미국의 '스페인 경제 제재설'은 총선을 불과 1주일 앞둔 스페인에 정치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스페인 극우정당 복스(VOX)는 여론전에 나섰다. VOX 소속인 에르만 테르취 유럽의회 의원은 페리오디스타디히탈과 인터뷰하면서 현 페드로 산체스(사회노동당·PSOE) 스페인 총리를 겨냥해 "스페인 좌파가 중남미 독재정권과 관련돼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그는 "스페인 사회주의자들은 마약 밀매·범죄자들과 다를 바 없는 베네수엘라나 쿠바 뒤를 봐주고 있다"면서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전 스페인 총리(2004~2011년 재임·사회노동당)가 베네수엘라를 위해 국제 변호사 노릇을 했었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페리오디스타디히탈은 현지에서는 가짜뉴스 살포로 악평 받는 온라인 극우매체다.
스페인은 오는 10일 총선을 앞두고 있다. 산체스 총리가 올해 4월 말 조기 총선 때 자신이 이끄는 사회노동당을 승리로 이끌었는데, 사회노동당이 의회 다수석(총 350석 중 123석)을 확보했음에도 과반 수에 미치지 못해 산체스 총리가 연정 구성에 나섰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오는 10일 총선을 다시 치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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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왼쪽)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오른쪽)과 가까운 사이이다. 마크롱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간 서로 날 세워온 사이이고, 산체스 총리도 트럼프 대통령과 정치·외교 노선이 다르다. [출처=스페인 정부] |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가 오는 11월 11일 '아바나 500주년 기념 행사' 참석차 쿠바를 방문할 계획인데 산체스 총리는 이를 적극 지지했다. 쿠바와 베네수엘라는 절친한 나라라는 점에서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아바나 행사를 찾을 가능성이 높고, 이 때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과 마주칠 수 있다고 스페인 언론이 전했다. 스페인 국왕이 마두로 대통령을 만나면 스페인이 마두로 정권 정통성을 용인하는 시그널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반면 트럼프 정부는 줄곧 쿠바와 베네수엘라를 사회주의 독재 정권이라고 맹비난하면서 연달아 제재를 발표했다. 올해 1월 미국은 후안 과이도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을 베네수엘라 대통령으로 인정했고, 스페인을
다만 유럽 입장에서는 쿠바·베네수엘라와 협력 사업이 많다.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 정부가 제재를 남발해 효과성이 떨어지거나 집행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재무부 보고서가 나왔고 연방 의회 지적도 따랐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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