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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멘트 】
1970년대 말, 캄보디아에서 벌어졌던 대학살 '킬링필드'를 기억하십니까?
학살을 주도했던 전범이 30여 년 만에 법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조익신 기자가 보도합니다.
【 기자 】
1975년, 폴 포트는 캄보디아에서 공산혁명을 일으켜 크메르루주 정권을 세웁니다.
폴 포트가 내세운 노선은 농촌 혁명.
크메르루주 정권은 도시를 해체하고, 시민들을 농촌으로 강제 이주시킵니다.
수도 프놈펜에서만 시민 200만 명이 시골로 끌려갑니다.
캄보디아인들은 강제 노역과 기아, 질병에 시달리다 약 170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크메르루주 정권의 악명을 더욱 드높힌 건 '캄보디아판 아우슈비츠' 뚜옹슬랭 수용소입니다.
만 7천여 명이 수용됐던 뚜옹슬랭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단 7명.
수용자들은 정치인과 의사, 교수, 공무원과 같은 캄보디아의 지식인과 그 가족이었습니다.
이들은 지독한 고문을 당한 후, 초엉억으로 옮겨져 살해, 매장됐습니다.
초엉억이 바로 크메르루주 정권의 악행을 상징하는 '킬링필드'입니다.
뚜옹슬랭의 참상은 영화 '킬링필드'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뚜옹슬랭의 소장을 지낸 카잉 구엑 에아브가 캄보디아 국제전범재판소 법정에 섰습니다.
1979년 크메르루주 정권이 무너진 후, 전범에 대한 첫 재판이 이뤄진 겁니다.
재판 결과는 35년 징역형.
희생자 가족들은 형량이 너무 가볍다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일부에서는 크메르루주 사령관 출신인 훈센 총리에게 비판의 화살을 돌렸습니다.
MBN뉴스 조익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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