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증권 인수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일본계 금융자본 오릭스가 현대증권의 새 수장으로 김기범 전 KDB대우증권 사장을 낙점했다. 윤경은 현대증권 사장의 거취를 둘러싸고 ‘현대증권 CEO 잔혹사’가 반복될지 업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오릭스는 김 전 대표에게 현대증권의 신임 대표로 내정된 사실을 통보했다. 오릭스는 현대증권 인수를 위한 주식매매(SPA)를 체결한 후 신임 최고경영자(CEO) 임명을 공식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표가 현대증권 사장직에 정식 선임되면 메리츠종금증권, KDB대우증권에 이어 세 번째 증권사 CEO직에 오르게 된다.
윤경은 사장의 행보는 아직 안개속이다. 오릭스로 주인이 바뀌면서 김 전 사장과 바통 터치를 할지, 당분간 공동 대표 또는 각자 대표 체제로 나갈지 확실치 않은 상황이다.
윤 사장은 현대증권을 흑자로 돌려놓으면서 경영면에서는 합격점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고강도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조합과 상당한 마찰을 빚은 점은 분명한 감점 요인이다. 윤경은 사장은 올해 초 재선임에 성공해 임기는 오는 2018년 2월까지다. 재선임 이후 지난 4월 처음으로 자사주를 2억원 가량 매수하면서 책임 경영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지만 오릭스의 의중은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윤 사장이 현대증권의 원톱으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뒷말도 적지 않았다. 윤 사장의 전임자는 김신 전 현대증권 사장이다. 미래에셋증권 대표 출신의 김 전 사장은 2012년 4월 현대증권 사장직에 선임됐다. 하지만 그해 11월 당시 윤 부사장이 각자 대표로 임명되면서 이미 불안한 기류가 감지됐다. 결국 김신 대표는 임기를 불과 1년 정도만 채우고 중도 사임하게 된다. 사실 공동 대표 체제가 주로 수장 교체기에 경영 공백을 막기 위해 주로 활용되는 만큼 윤 부사장의 공동 각자 대표 선임과 함께 김 전 사장의 퇴임은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현대그룹 밖에서 영입된 김 전 사장이 노조 이슈 등 주요 현안과 관련해 그룹 최고위층의 측근들과 다소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라며 “윤 대표는 김 전 사장과 반대로 오너의 측근쪽에서 밀었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말했다.
김 전 대표 이전 현대증권의 수장이었던 최경수 현 거래소 이사장도 잔혹사의 주인공 중 한명이다. 관료 출신인 그는 2008년 현대증권 사장에 선임됐다. 2010년 연임에 성공한 뒤 임기를 5개월 가량 남겨둔 상황에서 금융투자협회 회장 선거에 나섰다. 현직 사장이 협회 회장직에 출사표를 던진 데 대해 곱지 않은 시각이 많았다. 결국 그는 박종수 전 우리투자증권 사장에 밀려 2위로 낙선한다. 현직 CEO가 협회 회장직 선거에 나서고 낙선한 뒤 현직에 다시 돌아오는 모양새는 분명히 좋지 않다. 결국 현대그룹은 최 전 사장이 낙선한 뒤 불과 10일여 만에 김신 전 미래에셋증권 대표를 새 수장으로 영입한다고 발표한다.
최경수 사장 시절에 앞서 2003년부터 2008년까지 현대증권을 이끌었던 김지완 전 사장의 퇴장도 아름답지 못했다. 김 전 사장은 2007년 12월 말 갑자기 중도 사임했다. 현대증권이 밝힌 사임 이유는 담석증 등으로 인한 건강 악화였다. 하지만 그는 현대증권 사장직 중도 사퇴 이후 불과 두달 만인 2008년 2월 보란 듯이 하나대투증권 사장에 선임됐다.
김 전 사장의 사임 이유는 직전해에 있었던 현대증권 인사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현대그룹은 2006년 12월 김중웅 현대경제연구원장을 현대증권 공동 대표로 선임한다. 직급은 회장이었다. 김 전 회장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명목상 공동 대표이긴 하나 증권업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 김 전 사장의 머리 위로 올라온 것이다. 이 때문에 김 전 사장의 경질설과 조기 퇴임설이 지속
김지완 사장의 사임으로 현대증권의 단독 대표가 됐던 김중웅 회장은 2008년 5월 최경수 대표가 선임되고 그해 10월 현정은 회장이 이사회에 들어오면서 1년 5개월 만에 현대증권을 떠났다.
[매경닷컴 고득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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