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흐름을 파악하고 저금리 시대에 투자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자산운용사들이 무분별하게 펀드를 양산해 투자자들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특정 시장이 상승하면 일제히 관련 펀드를 쏟아내 투자자들을 유인하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어서다.
시장 분석을 바탕으로 한 예측보다는 현상에 치중해 펀드를 출시하다보니 운용사들이 ‘비싸게 사고 싸게 파는’ 잘못된 투자문화를 조성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한국펀드평가 펀드스퀘어에 따르면 올 3분기 들어 국내에 신규 설정된 해외주식형 펀드(채권형, 주식·채권혼합형 제외) 수는 모두 16개다. 이는 지난 2분기 45개의 3분의 1 수준이며 1분기(23개)에 비해서도 크게 줄어든 수치다. 전체 신규설정 펀드 수가 2, 3분기 각각 106개와 100개로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반기 글로벌 증시 호황에 해외주식형 펀드 출시에 사활을 걸던 자산운용사들이 최근 증시 침체에 국내주식형이나 채권형·혼합형 펀드로 급격히 방향을 튼 것으로 풀이된다.
신규 해외펀드 수가 급격히 감소한 배경에는 중국 증시의 폭락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운용사들이 신규설정한 중국펀드는 모두 28개(1분기 9개, 2분기 19개)에 달했다. 특히 상해지수가 4000~5000선을 유지하던 4~5월 출시된 31개 새내기 해외주식형 펀드 중 12개가 중국펀드일 정도로 운용사들은 과열된 투자 분위기를 이용했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이미 중국증시가 많이 올랐지만 역사적 고점 대비 여전히 저평가 돼있다는게 운용사들의 논리였다”며 “운용사 상당 수가 이미 중국펀드를 2~3개씩 보유하고 있음에도 새로운 관련 펀드를 경쟁적으로 시장에 내놨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운용사들이 펀드를 출시하면 판매사인 은행·증권사들은 새로운 펀드에 마케팅 역량을 집중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6월초 5400포인트를 고점으로 상해지수가 급락하면서 중국펀드 출시는 맥이 끊겼다. 3분기에는 지난 7월 출시된 ‘신한BNPP일대일로펀드’가 유일하다. 운용사들은 저마다 중국증시의 기술적 반등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도 신규 펀드를 내놓지 않고 있다.
중국과 함께 신규 펀드 출시가 잦았던 아시아·태평양(이하 아태) 펀드도 3분기 들어 종적을 감췄다. 상반기 신규설정된 아태펀드는 10개이며 이중 6개가 그나마 변동성이 덜한 일본을 제외한 상품이었다. 그러나 3분기에는 어떤 운용사도 관련 펀드를 내놓지 않고 있다.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3분기 아태펀드 수익률은 -11.15%다.
시장 고점에서 관련 펀드를 무분별하게 출시하고 장이 하락하면 자취를 감추는 운용사들의 행태는 과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일본 니케이지수가 1만7000~1만8000선을 유지하던 지난 2007년 상반기 25개 일본펀드가 쏟아지더니 7000선까지 떨어졌던 이듬해까지 출시된 신규 일본펀드는 5개에 불과했다. 상해지수가 6000선을 돌파하며 고점을 찍은 2007년 10월 한 달간 운용사들이 내놓은 중국본토펀드는 모두 11개에 달했으나 상해지수는 이후 단 3개월 만에 4000선으로 내려앉았고, 10개월 만에 1900포인트까지 급락했다.
최근에는 일본·유럽 등 선진국 펀드들이 우후죽순 출시되고 있다. 글로벌 조정장에서 선진시장의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평가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2분기 45개 신규 해외펀드 가운데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 펀드 비중은 28%(13개)였으나 3분기에는 68%(16개중 11개)까지 증가했다.
운용사들이 당장의 시장 흐름에만 치중해 펀드를 양산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들에게 돌아온다. 상해지수가 4000선 위에서 출시된 중국본토펀드만 17개에 달하며(현재 3300선) 마지막 고점(5000선 안팎)이던 5월말~6월초 출시된 중국펀드 가입자들은 이후 발생한 단기간 폭락에 손절 타이밍 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이라는 운용사들에게서 뚜렷한 철학도, 투자자들이 장기적으로 자금을 맡길 만한 신뢰도 찾기 어
운용업계 관계자는 “특정 펀드의 높은 단기수익률은 판매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고점일수록 앞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미국이나 유럽에 기반한 외국계 운용사들은 대부분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률을 추구하기 때문에 변동성 높은 시장에 펀드를 출시하고 싶어도 본사 승인을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용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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