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리치들이 최근 달러·채권·헤지펀드 등 안전자산 위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내외 시장의 변동성 확대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주가 상승기에는 시장 대비 초과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이 최우선 관심대상이었다면 이제는 시장이 하락할 때 방어할 수 있는 상품이 자산가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개별 주식이나 펀드에 직접 투자하기보다는 전문가에게 돈을 맡겨 다양한 자산에 분산투자하는 것도 슈퍼리치들의 눈에 띄는 변화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증권사가 고객 투자성향을 고려해 다양한 자산에 분산투자해주는 일임형 랩어카운트로 올 들어 7월까지 20조원의 자금이 들어왔다. 코스피 지수가 2000선 이하로 떨어지고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확산됐던 7월 한달 동안에도 8조원의 자금이 새로 유입됐다. 7월 말 기준 일임형 랩어카운트 잔고는 92조원으로 현 추세대로라면 머지않아 100조원을 처음으로 돌파할 전망이다.
일임형 랩을 포함한 투자일임 자산은 거액 자산가들의 선택을 받으며 500조원 규모로 커졌다. 투자일임이란 고객 명의의 계좌를 운용사·자문사 등 금융사에 맡겨 알아서 운용하게끔 만든 상품을 말한다. 과거 위탁규모가 큰 기관투자가들의 자금운용 수단으로 주로 쓰였지만, 최근에는 증권사 일임형 랩어카운트와 투자자문사 수탁 상품이 자산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며 투자액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올해에만 1조원이 넘는 자금이 들어온 헤지펀드도 부자들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투자처다. 일반 주식형펀드와 달리 전략 제약이 없는 헤지펀드는 공매도(Short)·차익거래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시장 상황에 관계없이 절대수익을 추구해 연 5~10%의 안정적 수익을 내준다.
경기 하락시 강세를 보이는 안전자산에 대한 투자가 늘고 있다. 자산가들의 달러 투자 비중이 늘어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대신증권이 판매한 달러 환매조건부채권(RP)에 투자한 경우 연 2%(특판 기준) 금리 수익에 더해 달러 대비 원화값이 연초이후 현재 약 7% 떨어진 만큼의 환차익까지 챙길 수 있다. 이를 감안하면 투자수익률은 9%에 달한다. 김진곤 NH투자증권 프리미어블루 강북센터 상무는 “과거 투자자들은 환율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같은 금융 상품이라면 환 헤지형을 선택했지만 최근에는 달러가 강세로 가면 환 차익을 얻을 수 있는 환 노출형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장기채에 대한 관심도 여전히 높다. 현재 개인 투자자가 보유하고 있는 국고채 20년물과 30년물 규모는 각각 1600억원, 2600억원에 달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고채 20년물과 30년물 금리는 각각 2.242%, 2.304%로 사상 최저치에 근접해 있다. 채권 시장 강세는 국내외 경기 둔화 우려로 안전자산 선호가 확대된 데다 하반기 국내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국고채 30년물은 2012년 9월 처음 발행되면서 거액 자산가들 사이에 ‘장기채 투자’ 붐을 일으켰다. 2013년 시장 금리가 단기 급등하면서 투자 손실이 10%까지 늘어나기도 했지만 올들어 금리 하락세가 본격화되며 수익으로 전환했다. 2012년 9월 중순 금리 3.02%에 발행된 30년 만기 국고채를 매수한 투자자라면 현재 이자를 포함해 3년 동안 25% 가까운 수익을 보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2006년 처음 시장에 도입된 국고채 20년물 투자자도 높은 수익을 내고 있다. 당시 국고채 20년물은 5%대 금리에 발행됐는데 이후 시장 금리가 떨어지면서 채권 가격이 급등했다. 2006년 국고채 20년물을 매수한 투자자라면 이자 수익을 합쳐 현재까지 수익률이 130%를 넘어선다. 연 15% 가까운 수익
신동준 하나대투증권 자산분석부 이사는 “대외적으론 미국 금리인상과 함께 중국 경제의 신용위험이 확대돼 국내에서도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향후 1~2년 간 장기 금리는 추세적으로 하락할 것이며 장기채 이상의 수익을 내는 투자처도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혜순 기자 / 석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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