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엔지니어링이 지난 3분기에만 1조5000억원대 대형 적자를 기록하면서 중동과 플랜트 수주 중심의 우리나라 해외 건설 수주 관행에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리스크 관리를 위해선 지역과 품목을 다변화하는 게 상식인데 과거 고유가 시절 돈 많은 산유국들을 대상으로 국내 업체들간에 ‘과당경쟁’을 벌인 게 위기를 자초했다는 평가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해외 건설 수주가 중동 지역에 48%가 쏠려있고 품목별로도 플랜트가 전체의 78%를 차지하는 게 현실이다.
정부는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22일 대외관계장관회의를 열고 국내 기업들이 중동 플랜트 수주 위주의 시장에서 벗어나 아시아, 중남미 등에서 다양한 해 인프라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용의 제3차 해외건설진흥계획을 최종 확정했다. 한국투자공사(KIC)와 손잡고 2조3000억원(20억 달러) 규모 ‘코리아해외인프라펀드(KOIF)’를 조성하는 것이 골자다.
3500억원 규모로 이미 운용되고 있는 글로벌인프라펀드(GIF) 보다 6배 이상 큰 규모다. ‘중동·플랜트·단순시공’ 위주의 해외건설 관행이 한계에 도달한 상황에서 ‘아시아·중남미·인프라·투자개발형 사업’으로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한 조치다.
정부는 또 최근 아시아시장에서 붐이 일고 있는 민·관협력사업(PPP)에 우리 기업이 공적개발원조(ODA) 자금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참여할 수 있도록 프로젝트 발굴부터 개발·건설·운영단계까지 일괄적으로 지원하는 패키지금융도 확대하기로 했다. 김경욱 국토교통부 건설정책국장은 이날 “3차 계획은 양적 팽창 위주의 해외건설 관행이 질적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지원체계를 재정비하고 지출 전략을 다양화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수주가 확정된 인도네시아 석유화학사업(8억 달러), 요르단 풍력발전사업(1억5000만 달러)은 물론 수주를 추진하고 있는 터기 화력발전소사업(180억 달러),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고속철도사업(120억 달러), 베트남 도시철도사업(22억 달러) 등에 KOIF 투자가 이뤄질 수 있다.
KOIF는 기존에 있는 1~5억 달러 규모 작은 펀드와 달리 20억 달러 규모로 조성돼 중·대규모 프로젝트 투자는 물론 해외국부펀드나 ADB 등 다자개발은행(MDB)과 연계에 유리하다. 달러화 베이스로 조성돼 원화 펀드와 달리 환율변동 리스크도 없다. 특별한 투자제한 국가가 없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3차 해외건설진흥기본계획은 해외 건설산업의 외적 성장을 넘어 질적 도약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며 “민간금융의 해외투자를 촉진해 투자개발형 사업을 활성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도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엔지니어링업계 한 관계자는 “기존에 없던 초대형 인프라 투자 펀드가 탄생했다는 점은 일단 긍정적”이라며 “연기금과 정책금융기관, 민간 금융회사 등도 이 기회에 무궁무진한 인프라 시장에 대한 금융지원을 획기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물론 인프라 사업에 출자할 경우 사업 기간이 길다는 점에서 리스크도 없지 않다. 또 대부분 아시아·중남미 등 국가리스크가 큰 곳에 수요가 몰려 있다는 점도 투자 저해 요소로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단기 실적 평가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KOIF나 ODA 자금을 결합한 금융지원이 투자개발형 사업 확대에 별 도움이 안된다는 비판도 많다.
[문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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