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2일 내놓은 신용카드 수수료율 인하 정책 여파로 당국이 당초 보호하려던 영세가맹점이 피해를 볼 전망이다. 카드사들이 수수료 인하에 따른 수익 축소를 만회하기 위해 밴사(신용카드 결제승인업체)에 주는 수수료를 깎을 태세이고 밴사들은 이에 따른 타격을 영세·중소가맹점에 떠넘기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3일 신용카드업계에 따르면 카드사들이 수수료 할인에 따른 수익 감소분을 밴 수수료 인하를 통해 해결책을 찾고 있다. 카드사 관계자는 “소비자 혜택 축소에 대해 정부와 정치권이 엄포를 놓고 있는 상황”이라며 “밴수수료 인하 외에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결국 밴사들도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수익에 도움 되지 않는 영세가맹점을 상대로 한 무료 단말기 보급이나 보수 서비스를 중단할 방침이다.
밴업계 관계자는 “밴 수수료가 줄어든다면 밴사들도 어쩔 수 없이 가맹점에 제공하던 서비스를 줄일 수 밖에 없다”며 “단말기 설치·보수와 전표 수거 등에 드는 비용은 대형가맹점과 영세가맹점간 차이가 없기 때문에 수익이 적은 영세가맹점에게는 단말기 설치비용을 전액 청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중구 신당동에서 작은 슈퍼를 운영하는 상인도 “지금도 밴 대리점들이 대형마트나 정유소만 신경 쓰지, 우리 같은 작은 가게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며 “내년부터 단말기 설치나 보수비용을 밴 대리점이 모두 내 놓으라고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카드사들은 저마다 비상상황이다. 순이익 감소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병건 동부증권 연구원은 “수수료율 인하로 카드사들의 당기순이익이 적게는 10%, 많게는 20%까지 감소할 것”이라며 “밴사 수수료나 마케팅 비용을 줄이는 등 내부적으로 비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뒤따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모든 부서들이 대책 마련에 비상사태”라며 “비용효율화 차원에서 전체 지출에 대한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 카드사들은 연말에 예정돼 있는 유관 단체와의 송년회 등 각종 행사를 취소하고 있다. 또 다른 카드사 관계자는 “비용을 줄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며 “인력 구조조정도 당연한 수순일 것”이라고 말했다.
카드사의 경영환경 악화로 인해 연쇄적인 악순환이 예상되지만 당국은 뒷짐만 지고 있다. 특히 영세사업자들이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신용카드 거부권’에 대해서는 모른채 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소비자가 가맹점에서 5만원 이하 결제할 때 가맹점이 이를 거부할 수 있는 방안은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소액 전표 수거거부 문제는 카드사와 밴사 간 알아서 할 문제”라며 발을 뺐다.
아울러 카드업계에서는 당국이 수수료율 인하 여력이 있다고 주장하며 근거로 내세운 저금리 기조에 대해서도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카드사 관계자는 “지난 3년간 저금리 기조만 이어졌다”며 “당장 내년부터 금리가 오를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내려간 수수료율이 다시 오를 것이란 보장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재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당국이 저금리를 유난히 강조하며 수수료율 인하 요인이 있다고 발표했다”며 “이제 앞으로 3년은 저금리시대에서 벗어나는 시점인데 이러한 점을 제대로 인식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당정의 카드 수수료율 인하 발표를 두고 ‘관치’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의 시장가격 개입 논란은 여전법이 개정된 지난 2012년 초부터 불거져왔다. 2012년 2월 카드 수수료를 금융당국이 정하도록 하는 여전법이 국회를 통과된 직 후 김석동 당시 금융위원장마저도 “가맹점 간의 부당한 차별 금지, 중소가맹점을 위한 수수료 경감이라는 여전법 개정안 취지 자체에는 공감한다”면서도 “그러나 중소가맹점 수수료율을 금융위가 정하는 것은 시장 질서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어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당시 카드업계를 대변하는 여신금융협회도 반대 의사를 표명하면서 금융위원회는 법안 재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시장가격 개입이 위헌적요소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기 때문에 금융당국에서는 부담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미 국회통과된 법을 불과 수개월 만에 재개정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웠다. 재개정 작업은 결국 ‘유야무야’됐고, 그해 12월부터 개
금융위는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이지만 결국 시장개입을 위한 법적 근거 마련을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금융위 관계자는 “시장개입에 반대하는 입장을 법 개정 당시 개진했지만 국회에 가로막힌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덕식 기자 / 김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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