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소재 한 증권사 직원은 정기 주주총회를 며칠 앞두고 황당한 일을 겪었다. 고급 외제 승용차를 타고 나타난 노 신사가 한 젊은 여성을 소개하며 "지금까지는 내가 주총장에 왔지만 앞으론 며느리가 올 테니 잘하라"며 은근히 돈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아무리 주주라도 돈을 드릴 수는 없다"고 정중히 거절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이 관계자는 "그 신사는 여의도 바닥에서 유명한 주총꾼인데, 이 일로 억대 수입을 올린다는 소문도 있다"며 "이제 며느리까지 대를 잇는다니 황당할 뿐"이라고 말했다.
3월 주총시즌을 맞아 주총꾼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일부 고소득 주총꾼들은 아예 가업으로 삼아 대를 잇기도 하고, 변호사 뺨치는 법률 지식까지 갖추고 회사 약점을 파고드는 등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주총꾼은 상장사 주식을 단 몇 주만 갖고도 해마다 주총장에 참석해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수법 등으로 금품을 뜯어 가는 비정상적인 투자자를 말한다.
상장사들은 해마다 주총시즌이 되면 이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요구하는 금액은 기업 규모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비교적 규모가 작은 코스닥 상장사는 5만원 내외, 규모가 큰 코스피 상장사는 10만~30만원 안팎이다.
수년 전 상장사협의회가 358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46.4%가 '주총꾼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거나 지금도 그렇다'고 답했다. 주총꾼에게 당하고 있는 기업 중에서 31.8%가 '평균 6~10명이 매년 나타난다'고 답했다. '주총꾼이 11~20명을 넘는다'고 답한 기업도 13.2%에 달했다. 상장사 관계자는 "최근 주총꾼들은 법률 지식도 상당하다"며 "주총장에서 감사 자리 배치가 상법에 위배된다며 난리를 피운 주총꾼이 있었는데, 변호사에게 확인해 보니 그 말이 맞았다"고 말했다. 상법에 통달한 주총꾼이 절차나 의전상 사소한 꼬투리를 발견해 회사를 압박한다는 얘기다. 등급을 나눠 피라미드 형태로 움직이기도 한다. 수년째 활동해 IR 담당자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진 주총꾼은 'A등급'으로 불린다. 리더는 B등급에 속하는 중간책 주총꾼을 여럿 거느리고 B등급 밑에는 일사불란하게 '실력행사'를 하는 C등급 주총꾼이 포진한다. 달래는 쪽을 택한 상장사들은 이 등급에 맞춰 금액을 차등 지급한다고 한다.
반대로 회사가 고용하는 주총꾼도 있다. 일부
[김태준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