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열 한은총재 국책銀 출자보다 대출에 무게
2009년 3월 출범한 자본확충펀드는 은행권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고 이를 통해 기업대출을 활성화해 실물경제를 돕겠다는 취지로 조성됐다. 당시 20조원을 모두 투입하면 2008년 9월 말 10.86%였던 은행들의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2.6%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총액 20조원 중 10조원은 한은 대출로, 8조원은 기관·일반투자자의 유동화증권 매입, 2조원은 산업은행이 후순위 유동화증권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었다.
실제로는 한은이 산은에 대출한 약 3조3000억원이 펀드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산은은 이 자금을 특수목적법인(SPC)인 자본확충펀드에 재대출했다. 펀드는 시중은행이 발행한 하이브리드채(만기 30년 이상 장기채권), 후순위채 등을 매입해 은행들의 자본 확충을 도왔다.당시 자본확충펀드에 손을 내밀면 취약성을 알리는 신호로 보일 수 있어 은행들이 사용을 꺼린다는 지적도 나왔다.
자본확충펀드 조성 및 활용 당시 한은에서 통화신용정책 부총재보와 부총재를 맡으며 이를 진두지휘한 이주열 총재가 이 방식을 언급한 데는 무엇보다도 '높은 회수 가능성'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위기가 잦아들고 은행권의 수익성이 좋아지면서 한은은 금리를 높이며 단계적으로 대출금을 회수했다.
자본확충펀드 모델은 지금도 유효한 방식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법적으로는 금통위원 4명 이상의 찬성으로 임시로 적격성을 부여한 담보를 받고 한은이 금융기관에 대한 긴급여신을 할 수 있다. 다만 담보를 필요로 하는 대출 형태는 결국 정부 빚과 연동될 가능성이 커 재정건전성에 민감한 기획재정부 등의 부정적 기류가 예상된다.
이 총재가 대출방식을 못 박은 것은 아니다. 그는 "출자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손실 최소화 원칙에 따르는 안을 협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출자에 대해 손실을 방지할 장치로는 출자 금액에 대해 정부가 일정 부분 한은에 충당금을 적립해 주는 방식 등이 거론된다. 또 이 총재는 구조조정에 따라 회사채 시장이 불안해지고 이를 한은이 지원하는 방안과 관련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선산업 구조조정을 할 경우 철강 등 관련 업종이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으면서 정보가 부족한 은행이 자금 중개를 보수적으로 운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한은은 지난해 조선·해운·건설 등 취약업종에 대한 '회사채 시장 정상화 방안'에 따라 산은에 대한 대출(3조4300억원)과 통화안정증권(액면 3조4500억원)의 상대 매출을 동시에 실시해 산은이 신용보증기금에 500억원을 출연할 수 있도록 지원한 바 있다.
이 총재는 1951년 미국 연방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가 맺은 협약 등을 언급하며 구조조정 국면에서 미 연준과 재무부가 보인 역할분담 사례를 거듭 강조했다. 미국은 1951년 재무부와 연준 간의 합의(1951 Treasury-Fed Accord)를 통해 연준은 신용위험을 지거나 특정 부분에 대한 자금 지원을 피해야 한다고 명시한 바 있다. 이 총재는 정부와 한은이 대립하고
한은의 수장인 이 총재가 한층 분명한 입장을 밝히면서 향후 구조조정 추진에 어떤 영향을 줄지 관심이 쏠린다.
[정의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