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문서는 서면문서와 내용 및 형식(글자 및 그림 크기 등)이 동일해야 한다."
손해보험사 직원 A씨는 황당한 규제를 발견했다. 태블릿PC를 이용해 보험을 계약하려 했지만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규정 때문에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2012년 만들어진 '보험계약 체결 시 전자문서 작성 및 관리 기준'은 양 손바닥만 한 태블릿PC에 종이문서와 동일한 형식을 요구했다.
A씨는 금융당국에 '감점' 처리될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손해보험협회의 익명신고 제도를 통해 이의를 제기했다. 금융위원회는 추가 검토를 거쳐 "해당 규정은 이제 무효"라며 "위반하더라도 조치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지만 A씨는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금융사 입장에서 금융당국을 향해 이의를 제기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불합리한 금융규제나 당국의 규제에 따른 고충을 보다 안전하게 익명으로 제보할 수 있게 된다. 제보자의 신분이 누설되거나 금융당국이 제보자에게 보복성 조치를 가한 정황이 드러날 경우 금융위원장이 직접 나서 강하게 단속할 방침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8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금융위 옴부즈만 제도 설명회'에 참석해 "금융회사 직원 등 금융당국의 불합리한 금융규제로 인해 고충이 있는 이해관계자는 '누구나, 언제든지, 그리고 불이익 없이' 익명으로 옴부즈만에 신고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임 위원장은 "옴부즈만에 대한 제보를 방해하거나 신청인에 대해 불이익 조치를 할 경우 금융당국의 수장으로서 책임지고 강하게 단속하겠다"고 비밀보장을 약속했다.금융사 직원들은 각 협회 홈페이지와 금융규제민원포털을 통해 익명으로 고충민원을 접수할 수 있다.
금융위 옴부즈만은 설명회 직후 가진 회의를 통해 그동안 숨어 있던 비공식 금융행정규제(그림자 규제) 885건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그림자 규제를 금융규제 운영 규정에 맞게 검토한 결과 775건을 지켜도 되지 않을 '비금융규제'로 분류하고 금융규제 민원포털과 각종 금융협회를 통해 전달할 예정이다.
옴부즈만은 비공식 행정지도나 구두지도 등 이른바 '그림자 규제'를 감시하고 금융소비자 권익을 보호할 목적으로 올해 2월 말 출범했다. 금융당국의 불합리한 금융행정지도나 감독행정에 대해 개선권고·건의 등을 통해 고충민원을 해소하는 역할을 맡는다. 장용성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 이사장을 위원장으로 7명의 위원이 활동 중이다.
은행 담당 옴부즈만 위원인 심인숙
[노승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