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이] -자살·경찰 수사·검찰 구속 부른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그림자, '조합장 비리'
-공공관리제에도 불구, 정보 공개 불투명한 '담배 연기 자욱한 방' 속 조합장에게 건설사·브로커가 던지는 '떡밥'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도 짙다'는 말은 서울 '재건축·재개발' 시장에도 들어맞는 말이다. 비싸도 사겠다는 투자자들의 뭉칫돈이 몰리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장 한편에서는 조합장들의 '제 밥 그릇 챙기기'가 끊임없이 구설에 오르내린다.
↑ 개포주공 4단지 아파트 |
자신이 '개포4단지 조합 감시단'이라고 밝힌 A씨는 "감정평가 과정에서는 조합원들의 자산 가치를 낮게 평가하고, 사업 비용 산정 과정에서는 시공사와 짜고 공사비를 지나치게 높게 책정해 조합원이 내야 하는 추가 분담금이 눈덩이처럼 부풀려진 데다 조합장이 운영비를 방만하게 쓴 의혹이 제기됐다"며 "한 조합원이 GS건설에 대한 시공사 무효소송이 제기돼 지난 7월 말 패소하기도 했지만 계속 불만이 나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12일에는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재건축 사업장인 송파구 '가락시영'(헬리오시티·총 9510가구)의 조합장 김 모씨(56)가 검찰에 구속됐다.
서울동부지검(형사6부)에 따르면 김씨는 브로커를 끼고 협력업체로부터 2억원가량의 뇌물을 받은 혐의에 더해 뇌물 일부는 개인 소송 시 변호사 고용비로 쓴 혐의도 받고 있다.
↑ 송파 헬리오시티 |
이달 초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시가 올해 상반기 중 11개 구역의 재개발·재건축 조합 500여 곳을 대상으로 운영 실태를 점검한 결과 도시정비법(도정법) 등 규정 위반으로 130건이 적발됐다. 이 중에는 부당 자금 환수 조치나 시정명령 등 '비교적' 가벼운 처분을 받은 곳도 있지만 경찰 수사를 받게 될 사업장도 있다.
조합 비리 중심에는 조합장이 있다. 조합장은 이해관계와 선호가 제각각인 조합원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공 많은 배의 선장 격이다 보니 사업을 빠르게 진행해 일반분양을 끝마치면 능력을 인정받아 스카우트 대상이 될 정도로 힘든 자리지만 온갖 부정선거와 이에 따른 고소·고발이 난무하는 것도 현실이다.
사실 조합장이 받는 공식적인 월급은 '소소하다'는 것이 업계의 평이다.
서울시 최근 자료를 보면 2014년 재건축 조합장의 평균 월급은 273만원, 재개발 조합장은 267만4000원이다. 물론 사업장 규모가 클수록 많이 버는 측면은 있다. 조합원이 100명 미만인 소규모 사업장에선 재건축 조합장이 213만8000원, 재개발 조합장이 218만2000원을 받지만 조합원이 2000명 이상인 대형 사업장 재건축 조합장은 409만4000원, 재개발 조합장은 375만원 정도를 받는다.
↑ 2014년 서울시 재건축 재개발 조합장 평균 월급. 출처=서울시 |
한 대형사 정비사업 부문 담당자 C씨는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조합장의 마음을 사기 위한 구애 작전이 비용 없이 이뤄질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지난 6월에는 은평 역촌1구역 재건축 조합장 양 모씨(63)가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건설업체에 10억원을 요구해 2억원을 받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기도 했다.
검찰 등에 따르면 가락시영 재건축의 경우 브로커 3명이 업체 4곳에서 로비를 명목으로 총 8억1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각자 밥그릇을 챙기기 위한 조합장과 건설사의 잘못된 로비 로맨스는 조합 전체 입장에서 보면 낭비와 비효율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경제학에서 말하는 '지대추구행위(rent-seeking behavior)'로 볼 수 있다. 시공권과 분양가 책정을 두고 수억 원의 뒷돈과 로열동·층의 펜트하우스, 각종 향응이 오가는 한편에서 조합원들의 추가 분담금과 일반 분양가는 갈수록 높아진다.
2010년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재건축·재개발 사업 비리를 감시하도록 서울시가 도입한 '공공관리제'는 아직 역부족이다. 이유로는 우선 해외 건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대형 건설사들이 앞다퉈 강남 3구 등에서 시공권을 얻기 위해 출혈 경쟁도 마다하지 않는 상황을 꼽을 수 있다.
조합장 등을 둘러싼 건설사(현대건설·대림산업·롯데건설)의 구애 경쟁이 경찰 수사를 부를 정도로 치열하게 벌어졌던 서초 '삼호가든3차'에서는 결국 조합장이 6월 말 해임됐다.
인근 D공인 관계자는 "지난해 5월 시공사 선정 당시 조합장이 '디에이치' 브랜드를 론칭한다고 선언한 현대건설에 편파적인 지지를 보냈다는 비판이 있었고, 이어 조합 운영비 지출에 대한 의혹이 조합 내에서 계속 불거지기도 했다"며 "현재는 재건축 사업이 올스톱이 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불투명한 의사결정 과정도 문제다. 사실상 '종신직'이나 다를 바 없던 조합장의 임기는 서울시에 의해 2012년 이후로는 2년으로 줄었다. 하지만 '밀실정치'의 여지는 남아 있다.
개포 일대 한 재건축 사업장 조합원 E씨는 "주요 안건을 대의원회를 통해 정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오가는지 알 수 없는 데다 반대 의견을 가진 조합원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깡패(용역 요원)'를 동원하기도 한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이른바 '담배 연기 자욱한 방(smoke-filled rooms)'에서 조합장이 저지를 수 있는 비리는 다양하다. 대의원회의 인준을 받지 않고 직원을 채용하고, 직원에게 규정 외의 수당을 지급하거나 사업비를 집행할 때 간이 영수증으로 처리하는 식이다.
재건축·재개발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김조영 변호사는 "조합이 일반분양 가격을 높게 매겨도 '완판 행진'이 이어지지만 정작 조합원들은 수억 원 하는 추가 분담금을 내고도 일반분양에 따른 수익을 제대로 나눠받지 못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라며 "의사결정 구조가 전혀 투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사업 인허가 과정의 키를 쥔 구청장이 법적으로 조합 비리 점검 권한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황 역시 비리를 사실상 방조하는 결과를 낳는다. 자치구 차원에서는 서초구가 7월 말부터 관련 부서 과장급 공무원들이 현장을 돌며 대표적 갈등 사안으로 꼽히는 '조합 임원 선출·시공사 선정·조합원 분담금 결정' 등에 관한 분쟁을 중재하도록 하는 '스피드 재건축 119' 추진단을 운영하는 정도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구청장이 점검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한 도정법 개정안이 지난 1
[김인오 부동산부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