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의 직장인 A씨는 최근 미국 대선이 끝난 직후 자신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들여다보고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최근 3년 동안 나름 증권사 영업점과 은행 프라이빗뱅커(PB)센터를 수시로 오가며 투자 전략을 짜왔던 터라 연 5% 이상 수익률은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2년 전 유행하던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20% 이상 손실을 본 데 이어 주가연계증권(ELS)은 투자 원금이 반 토막 난 상태다. 설상가상 증권사 리포트를 짬짬이 들여다보고 경제 뉴스까지 분석해가며 투자했던 주식에서도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A씨는 "이럴 바에는 은행에 돈을 꼬박 묵혀두는 편이 낫겠다"며 하소연했다.
증권사·은행의 일선 PB센터와 온라인 투자 카페 등에서 만난 개인투자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나름 분산투자를 했는데 분산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볼멘소리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막연히 '유망 투자상품' '한 주간 베스트 수익률 상품' 등을 좇아 투자에 나섰더라면 더 큰 낭패를 봤을 법하다.
이에 대해 시장 전문가들은 위험자산인 원화, 주식, 채권, 원자재, 부동산, 파생상품과 안전자산인 달러, 엔화, 국채, 금을 구분해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주식과 부동산, 파생상품에만 투자했다면 이는 모두 위험자산에 집중 투자한 것이지 여러 자산에 분산투자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
박영빈 대신증권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나는 코스닥 소형주와 대형주에 고루 투자하고 있고, 펀드도 몇 개 가입해서 꾸준히 납입하고 있는 등 분산투자를 하고 있다'는 착각을 한다"면서 "그러나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나 글로벌 금융위기 등 갑작스러운 대외 충격에는 이들 위험자산이 한꺼번에 폭락할 수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오류"라고 전했다.
박 매니저는 "실적과 같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변수 외에도 환율이나 정치적 리스크 등은 예상 가능한 범위가 넓어 리스크 측면에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이 때문에 제대로 된 자산배분 전략이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지금처럼 글로벌 경제가 유기적으로 상호 호환되는 상황에선 성장과 안정형, 고위험과 저위험 등 고루고루 투자하는 '바벨전략'을 취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트럼프 리스크에 신흥국에선 자금이 대거 빠져나가고 있고 상대적으로 이 자금이 선진국으로 몰려가는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면서 "어느 누구도 트럼프가 당선될 것으로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신흥국 투자를 줄이고 선진국 비중을 늘리는 포트폴리오를 개인투자가가 짜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관투자가조차도 미래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을 고루 투자한 뒤 시장 변동 상황에 맞춰 시시각각으로 투자 비중을 조정하는 바벨전략을 취한다"면서 "개인투자자도 이와 동일하게 접근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시장조사기관 이머징포트폴리오펀드리서치(EPFR)에 따르면 지난 10일부터 16일까지 글로벌 주식형 펀드에 총 274억9000만달러가 유입됐다. 이는 2014년 말 이후 최대 규모로 추산된다. 이 기간 선진국 시장으로는 329억3000만달러가 유입됐으나, 신흥국 주식형 펀드에서는 오히려 54억4000만달러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특히 북미지역은 307억5000만달러가 유입되는 등 최근 2년 새 가장 강한 자금 유입세를 보였지만, 신흥국 전반에 투자하는 글로벌 이머징마켓(GEM) 펀드는 46억3000만달러가 빠져나가며 최근 1년래 가장 많은 자금이 이탈했다. 또한 아시아 신흥국도 위험 회피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1
김수명 삼성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당선 이후 신흥지역 주가가 급락하고 환율이 약세를 보이면서 자금 이탈이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개인의 투자 성향에 맞춰 목표 수익률을 설정해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에 고루 투자하는 진정한 의미의 자산배분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고민서 증권부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