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전세난/사진=연합뉴스 |
"지난달 아파트 거래요? 한 건도 못했죠. 문의 전화도 없고. 10월 중순까지는 매물이 없어 못 팔았는데, 상황이 180도 달라졌네요."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의 말입니다.
이 대표는 "재건축 가격이 너무 올라 조정기가 올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예상보다 빨리 열기가 식고 있다"며 "여러 악재가 시장을 덮고 있으니 시장에 다시 온기가 돌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주택시장이 싸늘하게 얼어붙고 있습니다.
서울 아파트값은 2년 만에 하락세로 전환했고 과열 양상을 보이던 청약시장은 경쟁률이 떨어지며 미분양을 걱정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11·3부동산 대책의 강도가 시장의 관측보다 세게 나오면서 놀란 주택시장이 트럼프 후보의 미국 대통령 당선과 국내 정국혼란, 시중금리 인상, 금융위원회의 대출 규제 강화 등 한 달 만에 줄줄이 터진 악재로 빠르게 급랭하는 모습입니다.
부동산 업계엔 내년 이후 급증할 입주물량까지 주택시장의 '5대(大) 악재'로 인해 시장 경착륙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 서울 아파트값 2년 만에 하락…비강남권도 거래 '뚝'
4일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지난주 서울 아파트값은 그 전 주에 비해 0.02% 하락했습니다. 서울 아파트값이 떨어진 것은 지난 2014년 12월12일(-0.01%) 이후 약 2년 만에 처음입니다.
11·3대책 이후 한 달간 서울 아파트값도 0.05% 오른 데 그쳤습니다. 지난 9월 한 달 동안 1.21% 올랐던 것에 비하면 사실상 오름세가 꺾인 것입니다.
11·3부동산 대책, 국정혼란, 금리 인상, 대출규제 강화, 입주물량 증가 등 이른바 주택시장의 '5대 악재'가 시장을 짓누르고 있는 결과입니다.
약세는 정부의 11·3대책의 집중 타깃이 된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지난 한 달간 송파구의 아파트값은 -0.48%로 서울에서 가장 많이 떨어졌고 강동구 -0.35%, 서초구 -0.25%, 강남구 -0.18%가 각각 하락하는 등 강남 4구의 아파트값이 일제히 마이너스로 돌아섰습니다.
서울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는 11·3대책 이후 실거래가가 최고 2억원 넘게 하락했습니다.
이 아파트 112㎡의 경우 대책 발표 전인 지난 10월에는 최고 15억5천만원까지 팔렸으나 최근 이보다 2억4천300만원 떨어진 13억700만원에 거래됐습니다.
투자수요가 많이 몰리다 보니 가격 변화도 롤러코스터급으로 진폭이 큽니다.
인근 잠실박사 박준 대표는 "재건축 정비계획안이 시 의회를 통과하지 못한 것도 낙폭을 키운 원인 중 하나"라며 "대책 발표를 전후해 매수세가 급감하면서 지난 9월에는 24건이 팔렸는데 11월에는 2건 거래된 게 고작"이라고 말했습니다.
강남구 개포 주공1단지도 최고 1억원가량 떨어졌습니다. 이 아파트 전용면적 42㎡는 부동산 대책 발표 전 10억6천만원이었는데 현재 9억6천만원으로 1억원이 빠졌습니다.
전용 36㎡는 9억원에서 8억6천만원으로 4천만원 하락했습니다.
개포동 남도공인 이창훈 대표는 "가격이 내리면 사겠다고 했던 대기자들도 일단 좀 더 지켜보겠다며 발을 빼고 있는 상황"이라며 "매수문의도, 거래도 거의 없다보니 무리하게 가격을 낮춰서 팔아달라는 집주인도 거의 없다"고 말했습니다.
강동구 둔촌 주공단지도 10월에 비해 평균 5천만∼6천만원 하락했습니다.
둔촌동 SK선경공인 박노장 대표는 "당장 기준금리를 올리기도 전에 시중금리가 오르면서 집을 사는 사람들이 부담을 많이 느낀다"며 "앞으로 미국 금리 인상, 대출규제 강화 등 돈줄이 조여질 것으로 예상돼 내년 초까지 침체가 이어질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강북 등 비강남권도 관망세가 뚜렷합니다. 마포구 아현동의 S공인 대표는 "강남권이 휘청하니 강북도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며 "금리 인상 등 변수가 많아서 일단 시장 추이를 지켜본 뒤 움직일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성동구 금호동의 D공인 대표도 "거래가 없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지속하면 강북도 가격이 하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내년 초까지는 매수자들의 관망세와 눈치보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분양시장 1순위 청약 급감…"미분양 걱정할 판"
청약시장은 실수요자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서울·신도시 등 수도권 청약조정대상 지역에선 2주택 이상 보유자들의 1순위 청약을 막으면서 청약률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중흥건설이 지난 1일 동탄2신도시 A35블록에 분양한 '중흥S-클래스'는 435가구 모집에 1순위서 759명만 청약하는 데 그쳐 1.74대 1의 경쟁률로 겨우 미달을 면했습니다. 분양권 전매가 금지되면서 투자수요가 대거 이탈한 결과입니다.
앞서 지난달 3일 우미건설이 분양한 동탄2신도시 '우미 린스트라우스 더레이크' 아파트는 전매 강화 전 마지막 분양이라는 점에서 6만5천943명이 접수해 평균 79.07대 1의 경쟁률로 마감한 것과 대조적입니다.
서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달 30일 1순위 청약 접수를 진행한 서울 서대문구 연희파크 푸르지오는 서울 도심권에서 공급된 아파트임에도 불구하고 전용면적 112.8㎡가 1순위서 미달해 2순위까지 넘어갔습니다.
역시 이날 분양한 대림산업의 'e편한세상 서울대입구과 삼성물산의 성북구 석관동 '래미안아트리치'도 1순위 마감은 했지만 청약률은 5대 1 안팎으로 예전 인근 단지 경쟁률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쳤습니다.
반면 이들 단지에 비해 인기 단지로 꼽히는 곳은 상대적으로 청약률이 높아 같은 지역 내에서도 청약 결과가 차별화되는 모습입니다.
마포구 '신촌그랑자이'는 371가구 모집에 1만541명(당해지역)이 몰려 서울 1순위에서만 평균 28.4대 1로 전 주택형이 마감됐고, 송파구 '잠실올림픽아이파크'도 총 71가구 모집에 서울에서 2천50명이 접수, 평균 28.9대 1의 두자릿 수 경쟁률을 보였습니다.
전문가들은 청약조정대상 지역의 1순위 요건이 까다로워지고 재당첨 제한이 부활하면서 청약통장을 아끼려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동일 지역 내에서도 상품에 따라 청약 양극화가 심화할 전망입니다.
국민은행 박원갑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마포나 잠실도 과거 경쟁률에 비해선 낮은 수준이지만 다른 단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실수요자들이 많이 몰린 것"이라며 "통장 1순위와 재당첨 제한으로 인해 같은 지역 내에서도 청약성적이 극명하게 갈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청약률이 떨어지고 집값이 약세를 보이면서 미분양과 역전세난에 대한 공포도 커지고 있습니다. 불과 한 두 달 전까지 시장 과열을 우려했던 전문가들 사이에 이제는 시장 경착륙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더 높다.
부동산114 함영진 리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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