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출시장 긴급 점검 ◆
↑ 시중은행이 코로나19 위기에 대비한 리스크 관리에 나선 가운데 신한은행 삼성동지점에서 고객들이 금융 상담을 하고 있다. [김재훈 기자] |
과거 위기 때마다 은행들은 가장 취약한 계층인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에 대한 대출을 조였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달라졌다. 소상공인, 자영업자, 중소기업 등에 대해 정부가 앞장서서 대출 지원에 나서자 은행의 리스크 관리 전략도 바뀌었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대출보다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전세자금대출 등 가계대출이 우선적인 관리 대상으로 떠올랐다. 금융권에서는 정부 규제와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인해 가계대출과 관련한 은행 문턱이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12일 매일경제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시중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을 분석한 결과, 지난 4월 말 기준 5곳의 가계대출 합계는 624조6475억원이었다. 이는 작년 말(610조7562억원) 대비 13조8913억원(2.3%) 증가한 것이다. 작년 같은 기간에 9조1928억원(1.6%) 늘어났던 것을 감안하면 증가 폭이 확대됐다. 이 중 전세자금대출이 두드러진다. 5대 은행의 전세자금대출은 올 들어 4월 말까지 8조2653억원(10.1%) 늘어난 89조7730억원에 달했다. 작년 같은 기간에 8.1% 증가한 것과 비교해 올해 증가율이 2%포인트 높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와 일부 전세 목적의 수요가 겹치면서 신용대출 증가세도 올해 유독 두드러졌다.
2019년 1~4월 시중은행 신용대출이 2018년 말 대비 1% 감소한 반면 올해 같은 기간에는 3.4% 늘어났다.
통상 가계대출에서 72%(올해 4월 말 기준)를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에 따라 전체 가계대출 증가 폭이 정해졌지만 올해는 전세·신용대출 증가가 가계대출을 좌지우지한 셈이다.
신한은행은 한때 아파트 외 주택에 대한 전세자금대출 판매를 일부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신한은행은 전세자금발 가계대출 증가에 부담을 느껴 일단 부실 리스크가 높은 다세대 빌라, 단독 다가구 주택, 오피스텔, 원룸 등에 대한 신규 대출을 막아 보려고 한 것이다. 최근 코로나19 피해 기업과 소상공인 지원에도 대출 수요가 많은 만큼 한정된 재원을 먼저 도움이 필요한 곳에 공급하겠다는 의도도 있었다.
그러나 아파트 외 전세대출 역시 서민이 주로 이용하는 상품이고, 대부분 차주(돈 빌리는 사람)가 실수요자라는 점에서 비판 여론이 커졌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전체 전세자금대출 잔액 중 비아파트 신규 취급액 비중이 올해 1월 19%에서 4월 22%로 크게 증가했다"며 "증가율 속도 조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향후 은행권이 코로나19 대출 재원 마련과 가계대출 증가율 조정을 위해 가계대출 공급을 줄일 가능성은 남아 있다. 은행권의 가계대출 증가율은 연간 5% 수준을 넘지 않도록 당국의 총량 규제를 받고 있다. 지난해 말 대비 4월 말 기준 가계대출 증가율은 국민은행(4.06%), 신한은행(2.58%), NH농협은행(2.57%), 하나은행(1.03%), 우리은행(0.69%) 순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선 연간 가계대출 증가율이 높은 국민·신한은행이 내부적으로 가계대출에 대한 속도 조절에 들어갔고, 이 중 신한은행이 먼저 일부 대출 중단을 검토했다고 보고 있다.
신한은행은 올 들어 4월 말까지 전세자금대출 잔액이 총 22조543억원으로 전년 말 대비 13.7%(2조6622억원) 증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5.9%(9701억원) 증가한 것에 비하면 증가율이 2배 이상 커졌다.
일각에선 코로나19로 인해 주요 종목 주가가 크게 하락하자 높은 수익률을 기대
한 대형 은행 관계자는 "연초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생활자금 수요, 주식 투자용 레버리지 자금 수요 등이 몰렸다"며 "이 중 고신용자 수요가 몰린 일부 신용대출에 대해선 최대 한도를 줄이는 등으로 조치를 취했다"고 말했다.
[문일호 기자 / 정주원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