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新 머니무브 ① ◆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 창업자 레이 달리오의 얘기다. 현금보다는 다른 위험자산에 투자해 수익을 올려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실제로 국내 금융 시장에서는 은행 예금이 주식 시장이나 부동산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머니 무브(돈의 흐름)'가 나타나고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정기 예·적금(저축성 예금)은 지난 2월 말 총 545조6000억원에서 4월 말 551조9000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지난해부터 초저금리 시대에 돌입했지만 고수익을 보장하는 곳이 없어 막대한 자금이 은행에 머무른 것이다.
그러나 지난달부터 연 1% 이자도 주기 힘든 제로금리 시대가 본격화하자 돈은 저축성 예금에서 빠르게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지난달 4대 은행의 저축성 예금 잔액은 전달보다 7조5000억원 줄었다. 예금 수익률이 계속 떨어지면서 예·적금을 중도에 해지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만기가 됐더라도 다른 저축성 예금에 넣기보다는 주식 시장으로 '머니 무브'가 이뤄지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글로벌 경기 위축 우려에 코스피는 지난 3월 19일 1457.64까지 떨어졌다. 이후 4월 말 1947.56로 한 달여 만에 33.6% 상승했다. 이 같은 수익률에 놀란 개인투자자들이 지난달부터 주식 시장 진입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주식은 주가 상승 차익에다 배당이라는 '보너스'가 있는 것도 장점이다. 코스피 배당수익률(주당 배당금을 주가로 나눈 비율)은 올해 2.51%로 은행 이자보다 2배 이상 높다.
이효석 SK증권 자산전략팀장은 "폭발적인 유동성 증가 때문에 투자자들은 이제 현금을 버리고 무엇이라도 사려는 '숏캐시' 단계에 왔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고객 예탁금은 전달보다 1조1000억원 늘어 43조8000억원까지 증가했다. 작년 말(27조3000억원)과 비교하면 60.4% 늘어난 숫자다. 주식 거래대금 역시 5월 평균 20조원에 달한다. 작년 12월 일평균 거래대금이 10조원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2배 급증했다.
막대한 자금은 주로 비싼 주식에 몰렸다. 액면가 5000원 기준으로 1주당 100만원이 넘는 '황제주' 톱5(네이버·카카오·SK·아모레퍼시픽·삼성물산)에 지난 5월 1일 이후 이달 5일까지 1조5077억원의 개인 순매수세가 쏠린 것이다. 이들 주식의 주가수익비율(PER)은 삼성물산(19.1배)을 제외하면 모두 60배가 넘는 고평가된 주식이다. 코스피 평균 PER가 12배인 점을 감안해도 마찬가지다. PER는 주가를 1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값이다.
오현석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저금리·저성장 상황에서는 성장에 대한 기대가 있는 곳에 돈이 집중되게 마련"이라며 "성장이 기대되는 이유로 훌쩍 오른 주도주들에 관심이 몰리면서 개인들의 이들 주식 매수는 더 강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고가를 기록한 종목 따라잡기도 성행하고 있다.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종목 가운데 지난달에 52주 신고가를 기록한 주식은 네이버 삼성SDI 카카오 LG생활건강 엔씨소프트 오리온 CJ제일제당 유한양행 GS리테일 SKC 등 10개 종목이다. 개인은 이들 10개 종목이 각각 최고가를 찍은 날로부터 이달 5일까지 1조3600억원어치를 순매수하는 과감함을 보였다.
같은 흐름은 부동산 시장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돈이 고가 주택으로만 쏠리면서 상대적으로 비싼 집과 저렴한 집 간 가격 격차가 10년여 만에 최대로 벌어진 것이다. 국민은행 월간 주택가격 동향에 따르면 전국 가격 상위 아파트 20%의 평균 가격(8억원)을 하위 20%(1억1000만원)로 나눈 값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9억1530만원으로 작년 5월(8억1139만원)보다 1억391만원(12.8%) 상승했다. 1년 새 강남구 매매가격은 전용면적 84㎡ 아파트를 기준으로 14억7689만원에서 16억7572만원으로 1억9883만원(13.5%) 뛰었다.
[문일호 기자 / 김제림 기자 / 박윤예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