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기판 된 청약시장(上) ◆
↑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분양가 규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겪고 있는 둔촌주공 재건축 공사 현장의 모습. 이 단지는 HUG 규제로 조합원 분담금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한주형 기자] |
수십 년간 '내 집'에 살며 재건축을 기다려온 조합원들은 추가 분담금이 수천만 원씩 늘어나는 등 피해를 입는 반면 주로 서울 강남의 현금 부자·노년층 비중이 높은 청약 당첨자(일반분양)들은 '로또 분양'으로 막대한 차익을 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장기적으로 서울과 수도권 핵심 입지 주택 공급을 줄여 미래의 도시 잠재력도 갉아먹고 전 국민이 집을 사고팔지 않고 로또 복권처럼 청약 추첨만 기다리게 만드는 시장 왜곡의 대표적인 사례로 부각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최근 HUG와 협의 중인 둔촌주공 단지다. 15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이 조합 기대치(3.3㎡당 3550만원)에 크게 못 미치는 일반분양가(3.3㎡당 2910만원)를 받아들면서 분양 총수입이 7887억원가량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를 조합원 1인당으로 환산하면 약 1억3000만원씩 줄어드는 셈이다.
조합 측은 분양 수입이 감소하는 만큼 사업비(지출)를 최대한 줄일 계획이어서 결국 조합원들 이익이 줄어들고 완공될 아파트의 품질도 낮아지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HUG가 책정한 둔촌주공 일반분양가는 인근 시세와 비교해도 3.3㎡당 최소 1000만원 이상 저렴하다. 둔촌주공 인근 강동구 성내동 '올림픽파크한양수자인'의 3.3㎡당 평균 매매가가 3600만원, 강동구에서 지난 4월 입주한 길동 'e편한세상강동에코포레'의 3.3㎡당 시세도 4000만원대다. 직선거리가 더 가까운 송파구 '헬리오시티'(3.3㎡당 5184만원)와 비교하면 무려 2000만원 이상 차이가 난다. 조합원들은 예전 같으면 얻을 수 있는 개발 수익을 전부 빼앗기고, 이 수익을 엉뚱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게 된다는 게 현 청약제도의 핵심이다. HUG의 지나친 분양가 규제가 재건축 사업성을 떨어뜨리면서 도심 주택 공급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둔촌주공 조합은 기존 19가구로 예정됐던 보류지 물량을 법정한도인 총 29가구까지 늘리기로 했다. 일반분양 물량이 많을수록 손해여서 최대한 물량을 줄이기 위해 보류지 물량을 늘린 것이다. 지난해 일반분양분 통매각을 추진하다 무산된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신반포3차·경남아파트 재건축)도 계획했던 일반분양 물량을 346가구에서 225가구로 줄일 계획이다.
HUG의 지나친 분양가 규제가 남긴 것은 조합원들의 상처와 공급 위축, 그리고 '로또 청약' 광풍뿐이다. 정부와 서울시는 도심 공급을 늘리겠다고 하면서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대부분 줄여서 못하게 막고 있다. 이제는 재개발·재건축으로 인한 이익을 빼앗아가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까지 동원해 개발 의지를 떨어뜨리고, 엉뚱하게 서울 주변의 그린벨트 등 서울과 수도권의 삶의 질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마지막 보루마저 신도시 등으로 개발하겠다는 역설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특히 도심 공급을 대거 위축시키는 바람에 집값은 오르는데 분양가는 내려가 수억 원대 시세 차익을 기대하는 이들로 청약 시장이 붐비고 있다.
최근 청약 시장의 열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무순위 청약(일명 '줍줍') 열풍이다. 무순위 청약이란 입주자 모집 공고 이후에도 미분양, 미계약이 발생한 경우 추첨을 통해 공급하는 방식을 말한다. 지난달 대림산업이 진행한 서울 성동구 성수동 '아크로서울포레스트' 3가구 무순위 청약에는 26만4625명이 몰렸다. 수원 영통자이 무순위 청약에도 3가구 모집에 10만1590명이 몰렸다. 줍줍에 많은 수요가 몰리는 것은 청약 광풍으로 당첨 가점이 크게 올
전문가들은 이번 정부의 청약 정책이 20·30대가 적절한 타이밍에 대출을 받아 내 집을 마련하는 수단을 아예 봉쇄하면서 강남의 노년층 현금 부자에게 부를 몰아주는 대표적인 규제의 역설이라고 진단한다.
[정지성 기자 / 박윤예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