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금융-론스타 '진실게임' ◆
하나금융이 ICC 소송에서 100% 승소했지만 이 근거가 한국 정부의 개입에 따라 하나금융에 책임이 없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라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정부 측으로 이전되기 때문이다. 하나금융 승소를 마냥 좋게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이 가운데 하나금융·론스타 간 ICC 중재 소송 재판부는 지난해 5월 내놓은 판결문에서 "확률적으로 볼 때 금융위원회가 하나금융의 신청을 승인하는 대가로 가격 인하를 추진하도록 지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밝히면서 진실을 두고 한국 정부와 하나금융, 론스타 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ICC 재판부가 이 같은 판결의 근거로 '하나금융 측 증언의 일관성'을 거론하면서 논란은 한층 가중되는 모양새다.
ICC 재판부는 판결 과정에서 하나금융 측 증언이 ICSID 소송과 ICC 소송에서 변화가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하나금융 측이 ICSID 소송에서는 금융위 측과 가격 문제를 논의한 적이 없다고 했지만, ICC 소송에서는 하나금융 측 관계자가 금융위 관계자와 대화하고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또한 재판부는 하나금융이 '상업적 목적'에 따라 자발적으로 가격을 낮췄다는 증거에 대해 거론했다.
하나금융은 '협상 전략'에 따라 금융위를 거론하며 외환은행 가격을 낮추려는 전략이었다고 설명하는데, 재판부가 이를 입증할 만한 내부 서류를 요구했어도 이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마이클 톰슨 론스타 법무담당 부사장도 매일경제와 서면 인터뷰하면서 "하나금융 관계자들은 한국을 지지하는 ICSID 소송에서 하나금융이 한국 정부 지시가 아니라 주도적으로 행동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면서 "하지만 하나금융은 ICC 중재에서 ICSID 증언을 일부 철회하며 정부가 하나금융이 론스타에 지불할 가격을 낮추기를 원했다는 입장으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ICC 재판부는 한국 정부가 모든 것을 조정했고, 따라서 하나금융이 독자적으로 행동하지 않았으며 결과적으로 론스타의 손실에 책임이 없다고 결론지었다"고 덧붙였다.
론스타와 ICC 재판부 측 시각에 하나금융 측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당시 소송에 정통한 복수 하나금융 관계자에 따르면 "ICSID와 ICC 소송 모두 한국 측 법률대리인이 법무법인 태평양으로 동일하다"며 "한쪽 소송에 불리하게 될 진술을 다른 쪽에 하라고 법률대리인이 충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일축했다. 하나금융 측은 이어 "실제 진술에서도 이같이 엇갈리게 하지 않았다"며 "의장중재인이 정황상 추론을 마치 사실로 판단하고 결론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ICC 재판부가 주관적인 판단을 내렸을 가능성을 거론한 셈이다.
하나금융이 '상업적 목적에 따른 전략'으로 외환은행 지분 가격을 낮췄다는 것을 문서로 입증하지 못했다는 ICC 재판부의 판단에 대해서도 하나금융 측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하나금융 측 관계자는 "가격 인하를 위한 협상이 본격화한 것은 2011년 10~11월이기 때문에 8~9월에 적절한 근거 서류를 제출하기에는 일렀다"며 "2011년 11월 영국 런던에서 양측이 회동할 때 가격 인하의 근거를 충분히 제시했다"고 반박했다.
ICC의 판결문이 향후 ICSID 소송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하나금융 측은 부정적으로 봤다. ICC의 판결문 자체가 당시 의장중재인의 생각이 많이 반영됐기 때문에 이를 사실로 판단해서 ICSID 의장중재인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특히 최근 의장중재인이 새로 선임됐기 때문에 소송의 양상은 새롭게 검토될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 역시 ICC 소송과 ICSID 소송은 다르다는 입장이다. ICC의 판결 내용만으로 론스타가 승리를 자신할 근거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론스타는 당초 소송가액인 47억달러(약 5조7000억원) 가운데 6분의 1 수준인 7억9000만달러(약 9500억원)를 조건으로 제시하며 한국 정부에 협상을 제시했다. 정부는 아직 론스타에서 공식 제의를 받지 않았다.
정부는 공식적인 제안이 오면 검토한다는 입장이지만 협상안 수용 여부를 쉽게 결정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미 론스타가 외환위기 이후 국내에서 천문학적인 수익을 얻으며 국민들에게서 '먹튀'라고 지탄받는 상황에서
그렇다고 협상안을 무턱대고 거부하기도 어렵다. 만약 정부가 론스타의 제안을 거절한 뒤 ISD 소송에서 그 이상의 금액으로 패하면 그 후폭풍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승훈 기자 / 최승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