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아파트 전세 계약이 9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는 등 수도권 전세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가 전세를 퇴출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실제 지표에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윤준병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이 '전세와 월세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시중금리가 낮아 전세 보증금을 마련할 때 내는 이자가 월세를 내는 것보다 적어 임차인 입장에선 부담이 훨씬 적기 때문이다. 계약이 끝나면 돌려받을 수 있는 전세금과 달리 월세는 즉각 '사라지는 돈'임을 고려해도 여당 의원들이 현실을 너무 모른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3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전세 계약은 6304건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가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1년 이후 처음 6000건대로 떨어졌다.
전세 계약이 줄어드는 것은 아파트 뿐만이 아니다. 서민이 많이 거주하는 단독·다가구주택이나 다세대·연립주택도 전세 계약 건수가 감소하고 있다. 지난 달 서울 다세대·연립주택의 전세 거래량은 4501건으로 작년 7월(5603건)보다 20% 떨어졌다. 단독·다가구주택은 3193건으로 전년 동기(4900건)의 65% 수준에 그쳤다.
2016년 이후 전국 전·월세 거래량 중 월세(반전세 포함)가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줄어들었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는 되레 40.5%로 지난해(40.1%)보다 0.4%포인트 올라왔다. 서울의 경우는 올 상반기 41.7%로 작년(40.4%)보다 1.3%포인트 상승했다. 저금리 상황이 지속되며 집주인들이 월세를 선호하는 가운데 상반기부터 종부세 등 세금강화, 임대차 3법 등이 정부의 초강력 규제가 예고되자 전환 속도가 더 빨라진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월세 비중이 높아지면 서민들의 주거 부담은 더욱 높아진다고 지적한다. 강북구 번동주공4단지 전용44㎡ 사례의 경우, 현재 전세 매물은 거의 없지만 시세가 1억4000만원에 형성돼 있다. 하지만 이 매물의 월세 시세는 보증금 1000만원에 60만원이다. 만일 전세 수요자가 1000만원을 가지고 있고 전세가를 충당하기 위해 1억3000만원을 빌렸다면 매달 이자는 약 28만원(은행 평균 대출금리 2.5% 적용)을 내면 된다. 하지만 월세를 살게 되면 매달 주거비 부담이 2배로 껑충 뛰는 셈이다.
전셋값이 높은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강남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 84㎡의 현재 전세 시세는 16억원이다. 월세 시세는 보증금 13억원에 월 110만원 안팎을 내야 한다. 3억원 분에 대해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경우 월이자가 63만원임을 감안하면, 임차인 입장에선 월세가 전세보다 더 불리하다.
정부 규제 때문에 전·월세 매물 구하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전망도 나온다. 임대차 3법에 민간 분양가 상한제의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의 여러 규제가 전세를 없애는 속도를 빠르게 만드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손동우 부동산전문기자 / 나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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