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에서 전세로 사는 30대 권모씨(35)는 올해말 전세계약 만료를 앞두고 수원에서 새 전셋집을 알아보고 있다. 집주인이 직접 실거주할테니 집을 비워달라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권씨는 2년 전 5억원에 전세를 얻었지만 이제는 비슷한 보증금으론 강남에서 전세를 구할 수 없다. 불편을 감수하고 경기도에 거처를 구하기로 했다.
임대차3법·실거주 의무 강화 등 규제 역풍에 수억원씩 오른 전세값을 감당하지 못하고 서울을 떠나는 '전세난민'들이 늘어나면서 경기도 주요 도시 전세값이 폭등하고 있다. 수원, 용인, 인천 등 서울 출퇴근이 양호한 지역의 전세값이 서울과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오면서 자금 여력이 부족한 세입자들은 점점 수도권 외곽지역까지 밀려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27일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주간 아파트 가격동향(8월 24일 기준)에 따르면 이달 경기도 전세가는 지난주보다 0.22%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서울 전세가 상승률(0.11%)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경기도 전세값 상승세는 서울 출퇴근이 편리한 수용성(수원·용인·성남시)이 주도하고 있다. 이번주 전세가가 0.62% 오른 수원 권선구의 경우 지난 7월부터 0.5~0.6%에 달하는 높은 전세가 상승률을 기록 중이다. 이 지역 신축단지인 수원아이파크시티7단지의 경우 전용 59㎡ 전세가가 올초 3억원 초반대였지만 현재는 4억5000만~4억7000만원선에 호가가 형성되어 있다.
이번 주 전세가가 0.5% 오른 용인 기흥구는 올들어 지금까지 세종시(누적 23.47%)를 제외하고 전국에서 가장 높은 누적 전세가 상승률(13.27%)를 기록하고 있는 지역이다. 이 지역 주상복합 아파트인 기흥역센트럴푸르지오는 올초 실거래가 4억원 초반대였던 전용 84㎡ 전세매물이 현재는 5억5000만~6억원대에 나와 있다.
단지 인근 한 공인중개업자는 "안 그래도 코로나 때문에 매물이 잘 안나오는 상황에서 임대차법 시행 이후 매물이 아예 사라졌다"며 "서울에서 이사오려는 세입자 문의가 제법 있지만 매물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광명시(0.49%)는 정비사업 이주 수요가 많은 하안·일직동 위주로 전세가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과천시(0.45%)는 신축 단지 입주가 마무리되며 원문·부림동 대단지 위주로 다시 상승세다.
비교적 저렴한 전세가 많던 인천도 최근 전세가가 급등하고 있다. 인천 중구(0.41%)는 영종도 내 신도심 중심으로 전세매물 소진되며 강세다. 연수구(0.15%)는 주거환경이 양호한 송도동 위주로 상승 중이다.
이처럼 경기도 전세가가 급등하는 것은 서울 아파트 전세값 상승을 감당하지 못한 '전세난민'들이 대거 경기도로 이동하면서 매물이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전세값은 이번주 0.11% 올라 61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이는 전세대란이 일어났던 지난 2013년 이후 최장 기록이다. KB부동산 리브온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5억1011만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5억원을 넘겼다.
서울 접근성이 양호한 경기도 전세 매물이 품귀현상을 보이는 가운데 가을철 이사철을 맞아 수도권 전세난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26일 기준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가 임대차3법 등 시장 원리에 맞지 않는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세입자들의 고통만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부동산 문제는 규제보다는 물량 공급으로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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