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살, 동네 안경원 창업으로 시작해 현재 연 매출 500억 원이 훌쩍 넘는 중견기업의 CEO로 자리매김한 (주)다비치안경체인 김인규 대표의 성공 스토리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안경 사업으로 대박을 터뜨릴 수 있었던 비결부터 온갖 소송과 고발에 휘말려 인생 최대 위기에 맞닥뜨렸던 이야기 등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입니다.
Q. 안경원, 창업계기는 무엇인가요?
A. 매형이 안경원을 하고 있었어요. 마땅히 진로를 선택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제게 안경원 창업을 권유하셨죠. 그때가 26살이었습니다. 당시 안경원들이 모두 5~6평 정도로 조그맣게 열 땐데 저는 또 과감히 15평짜리로 개업을 했습니다.
Q. 그렇게 했던 이유는?
A. 차별화죠. 사업 경험도 없던 때였고, 뭔가 남들과 달라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커다랗게 매장을 차려놓으면 사람들의 시선을 끌 것이고, 장사가 잘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죠. 단순하지만, 나름의 전략은 있었습니다.
Q. 그래서 장사가 잘 됐나요?
A. 처음부터 잘 되진 않았어요. 그도 그럴 것이 ‘안경’은 충동구매가 아닌 목적구매이고,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제품이다 보니 원래 자신이 가던 안경원을 계속 가려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죠. 설상가상 개업한 지 두 달 만에 물건들을 모두 도둑맞아버렸어요. 눈앞이 깜깜했죠. 그래도 젊은 혈기 하나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외상으로 물량을 들여와 간신히 수습하고, 손님들한테도 정말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처럼 성심성의껏 대접했습니다.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열심히 상담해줬고요. 안경원에 들러주시는 것만으로도 너무너무 감사하게 생각했죠. 그런 마음은 곧 행동에도 반영이 되잖아요. 점차 손님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1년 만에 외상으로 진 빚도 모두 갚을 수 있었습니다.
Q. 안경 사업을 키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90년대 초 서울 남대문 시장이 국내 안경시장의 메카로 거듭나고 있다는 기사를 보게 됐어요. 제품의 가격이 국산과 수입제품 모두 시장의 일반 안경점보다 40% 정도 저렴해서 사람들로부터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드는 생각이 서울에 남대문 시장이 있다면, 부산에는 국제시장이 있다! 국제시장에서 판을 벌려보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대구 공장 등에서 물건들을 차떼기로 들여와 원가를 절감시키고, 제품 가격도 낮췄습니다. 누구보다 빨리 벤치마킹해서 시장을 선점했어요.
그러다보니 정말 개미떼처럼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경상도 지역 곳곳에서 손님들이 찾아왔어요. 거제에서도 오고, 진주에서도 오고 그랬죠. 이럴 바에 각 지역에 지점을 내면 되겠다 싶어서 지점을 내기 시작했고요. ‘가격 정찰제’도 이 때 도입을 했죠.
Q. 승승장구... 기분 좋으셨겠어요?
A.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시련은 그 때부터 시작이었습니다. 동종업계 사람들이 저를 고소, 고발하고 나선 것입니다. 자기네들 영업을 침해했다 이거죠. 법적으로는 제가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말입니다. 심지어 매장에 한 50명 정도가 찾아와서 영업을 방해한 적도 있었고, 조직폭력배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신변의 위협까지 느꼈습니다. 온갖 소송, 고발 사건에 대응하랴, 사업은 사업대로 진행하랴... 너무 힘들었죠. 그래서 결국 과로로 쓰러지게 됐어요.. 6년 동안은 그냥 쉬고, 여행 다니기만 했어요. 성공도 사업도 중요하지만, 건강을 잃으면 아무 것도 소용이 없겠더라고요.
Q. 6년 동안 쉰 다음 안경 사업에 다시 복귀하신 건가요?
A. 네. 한 몇 년 쉬다보니까 ‘벌써 정년인가. 30대 후반 밖에 안됐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새롭게 뭔가를 다시 시작해야겠구나 하는 결심이 섰고, 그리고 다비치안경체인을 만들었어요. 다비치는 “세상을 맑고 밝게 다 비춘다.”라는 의미로 지은 이름입니다.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동시에 이국적인 이름이죠? (웃음) 그리고 그 당시 대전에 교육원도 새롭게 만들었어요. 프랜차이즈 사업을 보다 체계적이고, 규모 있게 하려고요.
Q. 안경원 프랜차이즈 사업은 조금 낯섭니다. 사업을 하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A.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고객 만족’입니다. 교육원을 만든 것도 각 지점마다 동일한 서비스, 동일한 인테리어 등 통일성을 부여하기 위해서였어요. 현재 가격별로 안경 부스를 따로 만드는 ‘13579 가격정찰제’도 시행하고 있는데, 고객들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예산에 맞게 안경들을 모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전략들이 현장에서 잘 시행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기억을 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실행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본사에 머무는 날보다 현장에 있는 날들이 더 많습니다. 현장을 체크하고, 잘못된 것은 바로 잡고, 교육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전체의 통일성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Q. 한국식 검안법이라는 것도 만드셨어요?
A. 눈을 검사하는 방법이 워낙 많습니다. 안경사마다 검사하는 게 다 틀려요. 그러다보니 고객이 검사에 대한 만족도가 차별이 생겨요. 좀 전에 말씀드렸듯이 프랜차이즈 사업에서 ‘통일성’을 지키는 것도 중요한 요소잖아요. 그래서 저희만의 방법으로 따로 개발을 시작해서 만든 것이 지금 시행하고 있는 다비치만의 검안법입니다. 그런데 왜 한국식 검안법이냐하면 한국인의 특징에 맞게 프로세스를 구성했거든요. 덕분에 고객 만족도도 크게 높아졌습니다. 지금까진 이런 검사를 받아본 적이 없는데 너무 꼼꼼하게 잘 해준다며 좋아하세요. 검사를 받고 나서 친구한테 전화해서 “야, 여기서 안경맞춰!” 이렇게 하시는 분들도 있고.(웃음) 입소문이 많이 나서 소개를 받고 많이 오시기도 하고요. 재방문율도 높은 편입니다.
Q.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됩니다. 추후 계획은 무엇인지?
A. 앞으로의 계획은 후배들에게 좀 더 나은 시스템을 전문적으로 제공하고, 또 고객들에게 그 전문성이 다시 전달될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안경특성화 대학원을 만드는 것도 현재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업적으로는 프랜차이즈를 세계화시키고 싶습니다. 한 3,000개 정도? (웃음) 이미 미국에서는 성공적으로 진출해서 사업을 잘 하고 있습니다만 여기에서 만족할 게 아니라 유럽, 동남아시아까지 모두 다 장악하는 게 목표입니다.
김인규 대표의 사무실에 찾아간 날은 마침 그가 본사에 머무는 날이었습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