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과 실무 능력을 갖춘 적임자다.”
최근 이승엽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가 세종문화회관 사장에 임명됐을 때 공연계 반응이었다. 그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14년 동안 공연 기획·제작, 운영팀장, 경영지원팀장으로 잔뼈가 굵은 인사이기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과 무용, 연극 등 다양한 공연 장르를 두루 경험한 것도 장점이다. 세종문화회관은 서울시무용단과 서울시오페라단, 서울시극단, 서울시합창단, 서울시뮤지컬단 등 9개 예술단체를 거느리고 있다.
취임을 앞둔 그는 "예술공간으로서 세종문화회관의 호감도와 신뢰도,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데 집중하겠다”며 향후 경영 방향을 밝혔다.
그가 세종문화회관 수장까지 '접수'하면서 예술의전당 출신들이 국내 대표 공연장과 예술단체 상당수를 이끌게 됐다. 이종덕 충무아트홀 사장, 김의준 롯데홀 대표, 안호상 국립극장장, 이철순 양평군립미술관장, 박인건 KBS교향악단 사장, 노재천 안양문화예술재단 대표, 박성택 부산문화회관 관장, 유남근 천안예술의전당 관장, 고희경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표 등이 대표적이다. 공연계에서는 '예피아'(예술의전당과 마피아의 합성어) 전성 시대라는 말도 나올 정도로 숫자가 많다.
예술의전당이 문화예술 최고경영자(CEO) 사관학교가 된 이유는 '문화예술'과 '경영'을 동시에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1988년 개관한 예술의전당은 재정자립도 70~80%를 유지해온 재단법인이다.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공연장과는 달리 예술적 완성도 뿐만 아니라 수익 사업에 집중하면서 체계적인 실무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 생존경쟁을 하면서도 관객 눈높이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운영의 묘'를 터득하게 됐다. 최근 경기 침체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의 문화 예술 지원 예산이 줄어든 공연장들은 재정자립도를 높일 수 있는 경영인을 선호한다.
예술의전당은 설립 초기에 공연장 운영 요원 육성 5개년 계획을 시행해 인재를 키웠다. 호텔과 백화점 등 서비스 전문가들을 강사진으로 구성해 교육하고, 외국 유수 공연장에 연수를 보냈다. 신입사원들은 무대 청소와 티켓 판매 등 허드렛일을 하며 혹독한 훈련을 거쳤다. 새로 개관하는 공연장을 책임지게 된 임직원들도 열정이 넘쳤다.
1984년 공채 1기로 입사한 안호상 극장장은 "예술경영이란 선례가 없는 곳에서 스스로 터득하면서 창의적으로 업무를 진행했다”며"재단법인이라 관객 개발과 수익 사업, 재원 조달 중요성을 일찍 깨우쳤고 치열하게 일했다”고 말했다.
내부 경쟁도 치열했다. 오페라하우스와 음악당, 한가람미술관, 서예관 운영팀 등이 성과 경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공채 동기 간 협력과 경쟁 시스템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공채 1기 출신으로는 안 극장장과 이철순 관장이 현업에 있으며, 공채 2기로는 이승엽 사장, 고희경 대표가 공연장 수장을 맡고 있다.
이승엽 사장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예술의전당이 한국 공연 트렌드를 이끌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직원들의 역량이 높아졌다. 예술의전당처럼 전문적인 예술경영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조직이 많지 않아 강점이 됐다”고 설명했다.
고희경 대표는 "해외 공연 흐름을 받아들이는데 남보다 빨랐다. 1980~90년대 국내 문화예술 관객이 늘면서 예술의전당도 함께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예술의전당 출신 수장들의 경영 평가가 대체로 좋아 더욱 각광받는다. 안호상 극장장은 국립극장 혁신에 성공해 재연임에 성공했다. 김의준 대표도 LG아트센터를 빠른 속도로 정상에 올린 덕분에 국립오
하지만 정작 예술의전당 출신 인사가 아직 예술의전당 사장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문화부 차관 출신이나 예술인 등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물론 일각에서는 예술의전당 출신이 공연장 수장을 독식한다는 비판도 있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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