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에 바이올린이 입력되어 있었다.
독일 바이올린 거장 프랑크 페터 침머만(50)의 어머니는 바이올리니스트였다. 아버지는 뒤셀도르프 오케스트라에서 첼로를 연주했다. 할아버지도 바이올리니스트였다. 조부의 사촌은 독일 유명 작곡가 한스 피츠너다.
침머만은 이메일 인터뷰에서"세 살 때부터 아버지 덕분에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와 야사 하이페츠 LP 음반을 들었다”고 했다.
"일요일에는 아버지가 결성한 현악4중주 연습을 들으면서 자랐죠. 다섯 살 때 무조건 바이올린을 연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악기만이 나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는 느낌이 분명했죠.”
열 살 때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정식 데뷔했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천재는 아니었다. 그 흔한 국제 콩쿠르 입상 경력도 없었다. 조용하게 베를린 국립예술학교를 다녔다. 그런데 열 아홉살에 지휘 거장 로린 마젤에게 발탁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우직하고 철학적인 그의 연주는 세계 정상 오케스트라의 러브콜을 받았다. 베를린 필하모닉, 네덜란드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런던 심포니,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뉴욕 필하모닉 등과 협연하며 존재감을 키웠다.
그가 자주 협연하는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과 서울 무대에 오른다. 3월 13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탄생 150주년을 맞은 작곡가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려준다.
이 곡에 대한 그의 해석은 큰 변화를 거쳤다. 1991년 마리스 얀손스가 지휘하는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첫 음반을 녹음했지만 그 후 17년 동안 연주하지 않았다. 2010년 시벨리우스 고국인 핀란드 헬싱키에서 비로서 다시 이 곡을 녹음했다.
"나이 들면서 연주도 바뀝니다. 20대에는 로맨틱한 해석을 들려줬지만 지금은 악보를 엄격하게 지키려고 애쓰죠. 마치 메트로놈처럼 정확하게 박자를 지켜요. 카덴차(협주곡에서 독주자가 화려한 기교를 자랑하는 부분)조차 너무 많은 시간을 저한테 허용하지 않아요. 갑자기 너무 많은 음들이 나와서 시간이 소요되지만 템포를 유지하는게 가장 중요해요. 직선적이고 고전적이며 빈 공간을 허용하지 않은 연주를 지향합니다.”
마렉 야노프스키가 지휘하는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은 독일 정통 사운드를 유지하는 단체다. 분단 시절 폐쇄적이었던 동독에 위치해 고색창연한 음색을 유지할 수 있었다.
침머만은"매우 전통적인 소리를 내는 교향악단이다. 야노프스키는 30년 넘게 친분을 쌓아온 지휘자다. 한국인 아내(영주 침머만)가 쾰른 필하모닉 단원 시절에 음악감독이었다”고 설명했다.
지적인 연주를 들려주는 그의 연습 방법과 곡 해석 과정은 진지하다. 세계 정상에 오른 비결을 묻자"가족이라는 아주 든든한 삶의 기반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내가 얼만큼 원하고 얼마나 멀리까지 가고 싶은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답했다.
"물론 매일 연습해야 합니다. 하루라도 바이올린을 놓아서는 안되요. 재능과 열정도 중요하지만 제 한계를 알아야만 해요. 너무 많은 것을 원한다면 오래 지속할 수 없어요. 곧 실패하게 되죠.”
그가 요즘 깊이 연구하고 있는 작품은 바흐의 바이올린 독주곡이다. 예전에는 그가 너무 어리다고 느껴져 피했던 작품들이다.
"만약 무인도에 가게 될 때 세 곡만 가져가라면 바흐와 베토벤, 모차르트 작품
한국인 아내를 둔 그는 내한 연주를 고대하고 있다. 처가와 한국 음식, 맥주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02)599-5743
[전지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