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뮤지컬 ‘난쟁이들’은 동화를 난도질했는데도 더 진솔하게 다가온다. 엉뚱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기존 동화를 해체하고 비틀어 숨어 있던 본질을 찾아냈다.
작품은 백설공주와 신데렐라, 인어공주 속 등장 인물들의 속물 근성을 끄집어내 현대인의 비뚤어진 욕망을 풍자한다. 광산에서 뼈빠지게 일만 하는 난쟁이 ‘찰리’는 공주와 결혼을 꿈꾼다. 이제는 할어버지가 된 백설공주의 일곱번째 난쟁이 ‘빅’도 늘 백설공주를 그리워한다.
그런데 정작 목숨을 구해준 왕자와 백년가약을 맺은 백설공주는 성적 욕구를 채우지 못해 이혼했다. 매일 중노동을 한 후 집에 돌아와 잠도 안 자고 그녀를 사랑해줬던 일곱 난쟁이들을 몹시 그리워한다. 백설공주는 “진짜 남자는 난쟁이들이었어. 내가 바보였다”고 자책한다.
신데렐라는 결혼한 왕자가 ‘개털’이어서 이혼했다. 그 후 무도회에서 ‘있어보이는’ 왕자들만 나타나면 구두를 벗어 던지며 추파를 보낸다. 신데렐라는 모든 것을 주고도 버림받은 인어공주에게 신랄한 조언을 한다. “남자에게는 주는게 아냐. 후려쳐서 얻는 거야. 이번에는 실속 챙겨.”
극은 찰리와 빅이 불가능해 보이는 꿈에 도전하면서 탄력을 받는다. “돈만 있으면 다 이뤄질 수 있다”고 부추기는 마녀는 물질만능주의 세태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실제로 돈은 난쟁이들의 욕망을 불태우는 도화선이 된다. 비싼 대가를 치룬 마법을 통해 멋진 남자로 변신한다. “왕자가 아니면 무도회에 절대 못 들어간다”고 막는 성지기에게 뒷돈을 주자 성문도 활짝 열린다.
물론 마법의 한계는 있다. 3일 후 마법의 종이 울릴 때까지 공주와 키스하지 못하면 물거품이 된다.
어렵게 들어간 무도회는 세속적인 인간 세상의 압축판이다. 난쟁이는 왕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당한다. 이웃나라 왕자들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오만한 춤을 추며 부르는 노래 ‘끼리끼리’는 신분 격차를 강조한다. “오늘밤 네가 혼자라면 너 같은 사람을 못 만난거야.” 왕족과 평민, 부자와 가난한 사람은 어울릴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코믹하면서도 중독성 강한 멜로디 덕분에 이 노래 뮤직 비디오 조횟건수가 1만회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이 작품의 묘미는 역설과 반전이다. 동화 속 해피 엔딩을 비웃지만 기적 못지 않은 동화가 펼쳐진다. 백설공주는 늙은 일곱번째 난쟁이의 사랑을 받아준다. 찰리는 인어공주와 맺어진다. 찰리가 물거품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마녀에게 가슴을 바치는 인어공주의 진정한 사랑에 감동한다. 돈 없이 진심만 남은 해피 엔딩이다.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와닿는다. 부와 사랑을 다 가지기 힘든 세상 아닌가.
오랜만에 관객을 실컷 웃게 하고 마음까지 훈훈하게 만드는 소극장 뮤지컬이었다. 재치 있는 영상으로 채운 동화책 무대 세트 속에서 톡톡 튀는 배우들, 독창적인 대본과 음악은 비타민처럼 활력을 줬다. 우울할 때 보면 위로가 되는 공연이다.
뻔하지 않은 스토리에 깨알 재미, 개성과 에너지로 무장한 이 작품은 작곡가 황미나와
백설공주의 신음 소리가 요란하지만 선정적인 장면이 없어 만15세 이상 관람가다. 공연은 4월 26일까지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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