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김진선 기자] 배우 안두호는 뮤지컬 ‘아가사’에서 아가사의 주위를 맴돌며 특종거리를 잡는 기자 폴 역을 맡아 열연 중이다. 작품 속에서 기자 아니랄까봐, 자리에 앉자마자 기자의 펜을 보고 눈을 번쩍이며 “역시 기자는 펜 아닌가”라고 말하고는 짓궂게 웃는다.
극 중 폴이 너무 얄밉다는 말에 안두호는 “생각하는 것이 얄밉다”고 맞장구치더니, “아가사와 레이몬드에게 접근하는 게 좀 얄밉다. ‘라이온 킹’ 하이에나 같이 표현하려고 했다”고 폴 역에 대해 설명했다.
“실제 기자들은 어떤가”
극 중 폴에 몰입하기 위해 안두호는 먼저 작품의 서브텍스트에 대해 공부했다. 그는 “1926년 당시는 기자의 파워가 어마어마했다고 하더라. 대중들이 접할 수 있는 매체가 신문 뿐이라서 정계에 진출하기도 했다더라”며 시대에 대해 설명하는 데 이어, “폴은 아가사를 뛰어넘는 작가가 되고 싶은 기자 아닌가. 당시, 남자로서 자격지심이 느껴졌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폴에 대해 분석했다.
‘아가사’에는 “여자가 추리소설을?” “아마 사람 죽이는 상상이나 했겠지” “혹시 알아? 정말로 사람을 죽였을지”라는 등의 대사가 나온다. 당시 여성의 사회 진출에 색안경을 썼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하지만 폴은 천재 여류 작가인 아가사를 뛰어넘는 추리소설 작가가 되고 싶었고, 자신이 기자라는 점을 악용해, 아가사를 깎아 내리는 편파보도를 한다. 극 중 폴은 레이몬드에게 펜을 내밀며, 아가사에 대한 정보를 캐내려고 할 뿐 아니라, 유모에게도 접근하는 등의 치밀한 모습을 보인다.
이에 대해 안두호는 “자기가 글을 잘 쓰면 되지, 아가사의 약점을 파낼 뿐더러 아가사의 유모와 유모 딸을 이용한 것 아닌가 싶다”고 설명하며 “정말 속물 아닌가. 자기 위치를 악용해 타인들에게 해를 끼치는”이라고 제 3자의 입장에서 설명했다.
특히 그는 “요즘 기자들은 어떤가. 아가사 크리스티가 살았던 때 수첩과 펜이 기자의 상징이었을 것이지만, 요즘에는 태블릿 PC, 노트북이 그런 것 아닌가”라며 어떻게 일을 하느냐고 오히려 질문을 던졌다. 녹취를 하는 부분부터, 기록을 하는 것까지 얘기하는 과정에서 안두호는 직접 쓰는 시늉을 하며 작품에 몰입한 모습을 보였다.
이어 안두호는 “아날로그 적인 것도 좋은 것 같다”며 “‘아가사’에서 만년필을 쓰고 싶었는데”라고 작품의 디테일한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배우로서의 슬럼프, 관객으로 극복했다”
안두호는 ‘아가사’에 오르기 전 ‘락시터’ ‘발레선수’ ‘오 당신이 잠든 사이’ ‘러브 액츄얼리2’ 등에 출연하며 꾸준히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아가사’를 통해 대극장에 오른 안두호는 “극장 사이즈가 커지니까 에너지에 대한 확장을 해야 하더라. 소리가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느껴서 좀 배우고 싶은 욕심이 난다”고 말하며 웃었다.
다양한 작품에서 조용히 자신 만의 탄탄한 내공을 쌓은 안두호는 작품을 하면서 멘탈이 붕괴된 적 있느냐는 물음에 “당연히 있다”고 답하며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것을 느꼈을 내 기조가 흔들릴 때, 마음도 흔들린다”고 마음을 터놓았다.
이어 그는 “고민하고 고민하면 해결되는 부분이 항상 있더라”며 작품과 인물에 다가가며 자신을 다잡고, 그곳에서 배우로서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특히 안두호는 ‘배우로서의 희열감을 느낄 때’라는 질문에 한참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슬럼프가 왔을 때가 있었다”며 불과 몇 년 전 작품을 하던 당시를 떠올렸다.
극 중 쉽지 않은 역할을 맡았던 그는, 당시 자신에 처한 상황과 맞물려 극을 풀어가는 데 쉽지 않았지만, 커튼콜에 환하게 웃고 있는, 자신을 향해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관객들을 봤을 때를 언급했다.
안두호는 “날 응원해주는 관객들을 보고 내가 오히려 위안을 받았다. 그 때 ‘역시 배우를 해야해’라는 사명감도 생겼다”고 말했다.
안두호는 관객과 통했을 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며, “그 맛에 하는 배우를 하는 것 같다. 무언의 교류, 대화”라며 “배우는 영혼을 만지는 일이기 때문에 세속적이고, 탁하면 안 되는 것 같다. 때문에 순수하게, 깨끗하게 작품에 임하려고 한다”고 힘 있게 말했다.
배우는, 가뭄에 쩍쩍 갈라진 사람들 마음에 단비를 주는 사람이며, 수도꼭지를 트는 사람이라는 설명이다.
“작품, 있는 그대로 즐겨야”
안두호는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맛깔나게 표현했다. 폴이 너무 얄밉지만, 어디선가 존재할 법한 편안함과, 작품에 즐기는 모습이 안두호의 폴을 착착 달라붙게 했다.
그는 “공연을 할 때 즐기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다”며 “무대에 오르는 것이 일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못하는 것 같다. 재밌게 즐겨야 한다”고 말하며 짓궂게 웃었다.
이어 안두호는 “어떻게 보면 뮤지컬, 연극 모두 역할 놀이 아닌가. 관객들이 느끼기에 잘 노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아가사’도 모두가 다 역할 놀이 하는 듯 재밌게 한다”고 말하며 “그렇게 즐기면 관객에게 감동의 곱을 줄 수 있는 게 아닐까”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연기라는 것이 점수로 매길 수도 없고 답도 없는 것이기에, 마냥 즐길 수도 없는 일이다. 이에 대해 안두호는 “틀은 어느 정도 있는 것 같다”며 “얼마나 더 자유롭게 놀 수 있을까 . 피카소가 장난과 예술의 경계에서 표현했다고 하던데, 배우도 그래야 하지 않나 싶다.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마음이 닳아 없어지는 공연을 하고파”
안두호는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뮤지컬과 연극을 처음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재밌게 하고 있다. 어떤 결과를 바란다는 것도 아니고, 공부한다는 생각”이라며 “그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 때가 즐겁다는 생각”이라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특히 앞으로 하고 싶은 작품에 대해, “예전에 치매 환자들이 있는 병원에서 공연을 한 적 있는데, ‘엄마 내가 미안해’라는 대사에 한 할머니가 ‘아냐 내가 미안해’라고 말해 배우들이 다 눈물을 흘린 적 있다”고 당시를 떠올리더니, 한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극에 감도(感度) 높은, 드라마가 강한, 마음이 닳아 없어지는 작품을 하고 싶다”고 답하며 깊은 미소를 머금었다.
한편 안두호가 출연하는 ‘아가사’는 오는 5월10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김진선 기자 amabile1441@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디자인=이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