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손진아 기자] 한국 라디오드라마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책이 출간됐다. 한국성우협회는 발간위원회를 꾸려 성우들의 역정과 라디오 드라마사를 정리했다.
(사)한국성우협회는 10일 오후 KBS 신관 홀에서 창립 50주년을 맞이해 지난 1년 동안 준비해온 ‘성우들의歷程 韓國라디오드라마史’ 출판 기념회를 열었다.
목소리 하나로 온 국민을 움직여온 성우들은 방송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격적인 라디오 드라마는 1954년 KBS의 성우 1기 모집과 함께 시작됐다. 최초의 작품은 KBS ‘인생역마차’(1954)로, 청취자의 사연을 성우가 1인칭 목소리 연기로 내보내고, 다음 회에 문인·교수·법조인 등이 해답을 제시하는 형태였다. 1957년엔 라디오 전체 청취율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는데, 이듬해 폐지됐다.
이어 최초의 멜로 연속극 KBS ‘청실홍실’(1956) 등이 인기를 이었다. 인기만큼 질타도 상당했는데 서민의 삶과 동떨어진 도시 문화만 보여준다는 비판이었다. 그러자 ‘가족’이 등장했다. 아버지의 실직 이후에도 서로 위로하며 화목을 일궈낸다는 KBS ‘로맨스 빠빠’(1958) 같은 이른바 홈 드라마의 탄생이었다.
1960~70년대 라디오의 전성기를 맞아 미스터리극, 다큐멘터리 드라마 등 수많은 작품들이 등장하며 1965년부터 1983년까지 방송된 MBC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메가 히트작도 나왔다.
이 시대는 동시에 전환기이기도 했다. 영상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나문희, 김영옥 등 실력파 성우들이 TV로 옮겨갔다. 1980년 컬러TV 도입은 결정타였다. KBS·TBC 합병 등과 맞물리며 인력 차출도 가속화됐다.
이근욱 한국성우협회 이사장을 비롯해 김기복 한국방송실연자협회 이사장, 고은정 발간위원장 등은 한국 방송의 태동이 됐던 한국 라디오 드라마의 그 맥을 찾고자 사상처음으로 한국 라디오 드라마사를 편찬하게 됐다.
특히 이 이사장은 2013년 성우들의 역정과 라디오 드라마사를 정리, 편찬하기로 마음먹고 곧바로 작업에 뛰어들었고, 연세대학교 윤태진 교수와 집필진을 구성해 발간위원회를 꾸려 그간의 성우 역사 기록과 함께 작가, 연출가, 음향효과 관계자 등의 도움을 받아 책을 완성하게 됐다.
이 이사장은 “한국현대사를 함께해온 성우들을 재조명하고 과거 라디오드라마를 애청했던 분들에게는 회상을, 라디오드라마 역사를 잘 모르는 요즘 사람들에겐 호기심을 갖게 하고 싶었다. 지금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는 사람에겐 드라마 역사를 익히고 새로운 영감을 얻게 하고 우리 드라마를 연구하는 분들에겐 이 책이 지침서가 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고은정 발간위원장은 “방송의 꽃이라 불렸던 라디오 드라마의 역사가 방송 발사 시점으로부터 90년, 공채 성우의 역사 60년이 넘도록 단독으로 연구, 검토되거나 기록되지 못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기록에 약한 민족인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다”고 꼬집었다.
이어 “청각을 통해 풍부한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라디오 드라마는 우리의 언어 보존이나 정서 함양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며 “한국성우협회 이근욱 이사장과 임원들은 늦게나마 우리 라디오 드라마와 성우들의 공중분해된 역사를 소급 정리하고자 이번 책을 발간을 기획했다”고 덧붙였다.
과거 성우로 활동했던,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성우들에게도 이번 편찬 소식은 반가운 소식이다. 책을 통해 과거를 되짚어 볼 수도 있고, 역사를 몰랐던 후배들에겐 좋은 교과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1967년 동아방송 성우로 데뷔한 김을동은 “라디오드라마는 성우 역사 그 자체다. 하지만 우리 목소리로 써내려간 수많은 작품들이 매체의 다양화로 세월의 무관심 속에서 점차 잊혀져 가고 있다. 우리 후배들의 설 곳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소식도 듣고 있다”며 “이번 편찬은 성우들의 열정과 땀으로 빚어진 책은 작품이다. 그 오랜 시간을 역사의 순간으로 만들어주고 우리 모두를 역사의 순간으로 만들어줘서 감사하다”고 밝혔다.
손진아 기자 jinaaa@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