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그는 “나한테는 커피 마시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습관”이라고 말했다.
출근 후 여름 휴가철 텅 빈 연습실에서 춤을 춘다. 11월 6~8일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할 마지막 전막 발레 ‘오네긴’을 준비하고 있다. 그가 29년 동안 몸 담아온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과 함께.
강 단장은 “언제나 위(정상)에 있을 때 그만두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오래전부터 마지막 무대를 생각했어요. (은퇴) 타이밍이 중요하죠. 힘에 부쳐 기어다니면서 춤추는 느낌을 받고 싶지 않아요. 발레를 사랑하고 나를 존중하기 때문이죠. 가장 만족스러울 때 마지막 공연을 하고 싶었어요. 무대에서 100%를 보여주는게 제 책임이죠.”
마흔을 넘기면서 발레가 더 재미있어졌다. 그러나 차근차근 좋아하는 작품들을 그만둬야 했다. 클래식 발레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등 고난도 테크닉이 필요한 작품과 그의 대표작인 드라마틱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까멜리아 레이디’와 이별했다.
“발레 인생에서 끌려가면 안 되요. 솔직히 저는 클래식 발레 타입이 아니었어요. 제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다 배워야 했어요. 어느 순간부터 나이에 맞게 배역을 선택할 권한이 있어 다행이었죠.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예술감독도 이해해주셨고요. ”
아무리 잘 관리해도 48세 발레리나에게 전막 무대는 벅차 보인다. 전성기보다 체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제가 느끼는 전성기는 달라요. 1999년 ‘브누아 드 라 당스’(무용계 오스카상)를 받은 직후 다리 부상으로 1년 넘게 쉬었어요. 세상을 내가 가졌다고 느꼈을 때 지옥으로 내려갔죠. 젊고 패기 넘쳤을 때 정신과 몸의 균형을 맞추는게 힘들었어요. 원래 파워가 많아 가장 피곤한 상태에서 공연할 때 좋았어요. 공연 전에 일부러 몸을 지치게 만들었는데 40대가 넘어가면서 조절이 잘 됐죠. 당연히 예전처럼 쉬지 않고 팔짝팔짝 뛰지는 못해요.”
그가 은퇴 무대로 선택한 존 크랑코 안무작 ‘오네긴’은 좋은 추억이 많은 작품이다. 1996년 첫 공연 후 그의 가치를 높여줬다. 1998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뉴욕 공연 개막 무대에 올라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이 작품을 한 번 해보면 발레리나로서는 후회없이 죽을 수 있어요. 저한테 너무 많은 것을 준 작품이에요. 공연하면 할수록 더 성숙해지고 질리지 않았죠. 20년 전부터 지금까지 매일 변화하는 나를 표현해왔어요. 발레 은퇴작으로는 이보다 더 좋은 작품이 없어요.
주인공 타티아나는 감정 표현의 폭이 넓은 역할이다. 첫사랑에 설레는 순수한 소녀부터 애써 그 사랑을 외면하며 가정을 지키는 성숙한 여인까지 여인의 일생을 춤춰야 한다. 2004년 국내 공연에서 강 단장이 오열하는 장면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어떤 때는 미친듯이 소리 지르고 어떤 때는 속으로 아픔을 삼켰어요. 무대에서 다른 인생을 살아볼 수 있어 행복해요. 제 안에 있는 것을 다 뿜어낼 수 있는 스토리 발레는 건강에 최고죠. 표현하지 못하면 화병에 걸려요. 입으로 꺼내지 못하면 운동해서 땀으로 빼내든지 독이 바깥으로 나가야 해요.”
서서히 무용수 삶을 접는 대신 발레 행정에 몰입하고 있다. 이제 국립발레단 수장을 맡은 지도 1년 5개월째. 임기 절반에 접어든다.
“단원들 개성과 기량이 조금 더 발전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보람을 느껴요. 하반기에는 무대 수명이 짧은 무용수들을 안무가로 키우는 프로그램을 시작할까 합니다. 50년 동안 국립발레단이 잘 해온 클래식 발레에 네오 클래식, 모던 발레를 섞어 한 시즌을 채우고 싶어요. 클래식 발레는 밥과 김치 같아 안 먹으면 건강을 잃어요.”
전세계 무대
그는 “남편(터키 발레리노 출신 둔치 소크멘)도 나도 꽤 오래 고생했다. 다행히 강아지를 데려온 후 건강해졌다”고 했다.
※ 공연 문의 1577-5266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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