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장실은 땀과 눈물, 환희의 공간이다.
최태지 국립발레단 명예 예술감독(56)은 무용수 시절 이 곳에서 참 많이 울었다. 27년전 국립극장에서 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 주인공으로 춤추다가 넘어진 그는 공연이 끝난 후 무대 뒤로 달려가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최근 서울 매경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그는 “그 때 내가 너무 바보같았고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게 참 힘들었다. 항상 내가 모자란다고 생각해 더 치열하게 연습했다”고 말했다.
1996년 37세에 국립발레단장이 된 후에는 단원들을 위해 기도했다. 공연의 성공과 관객들의 만족을 비느라 노심초사했다.
“힘을 보태고 싶지만 공연이 시작되면 단장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어요. 단원들이 정신력으로 버티길 바라죠. 무대에서 약해지면 모든게 끝나요. 예전에 스위스 로잔 콩쿠르에서 심사할 때 강력한 우승 후보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기권했어요. 타고난 발레 무용수 몸을 가지고 재능이 있어도 정신이 강하지 않으면 실력을 발휘할 수 없죠.”
백스테이지는 무용수의 긴장과 후회로 가득 차 있지만 환희도 교차한다. 춤에 감동받은 관객들이 갈채를 쏟아낼 때 무용수는 가장 행복하다.
그래서일까. 지난해 1월 국립발레단을 떠난 후에도 마음은 늘 공연장에 있었다. 지난 1월부터 의정부예술의전당 모닝 콘서트 ‘최태지, 발레를 톡하다’ 무대에 해설자로 돌와온 이유다. 그는 국립발레단장 재임 시절인 1997년 ‘해설이 있는 발레’를 처음 시작해 발레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당시 입단 새내기 무용수 김지영(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주원 성신여대 교수, 김용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전면에 내세워 스타로 만들었다.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그 때 주역인 김용걸, 김주원,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출신 이원국과 발레의 세계와 백스테이지 풍경을 안내했다. 한국 발레 대중화를 이끈 주역들의 무대에 객석 열기가 뜨거웠다.
“처음 마이크를 잡았을 때 덜덜 떨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서 온 무대다보니 차츰 긴장이 덜해지고 가슴 속 깊은 이야기를 전할 수 있었어요. 발레를 처음 본 관객이 즐거워하니까 저도 기뻤죠. 사람들 행복 지수를 올리는 공연을 만들고 싶어요.”
무엇보다 옛 단원들과 호흡을 맞춰 감회가 새로웠다. 무대에서 그들과 함께 쌓은 추억을 쏟아냈다.
“모두 20년 가까이 함께 일했죠. 이원국과 김용걸, 김주원은 눈빛부터 다른 무용수였어요. 세 사람이 춤을 완성하는 과정을 지켜보는게 참 좋았어요. 이제는 그들이 제자를 키우는 리더로 활약하고 있죠. 그 제자들이 무대에서 서는 것을 보면 할머니가 된 것 같아요. 여생은 발레 영재들의 미래를 위해 봉사하고 싶어요.”
‘최태지가 무대로 돌아왔다’는 입소문이 퍼져 9월 12일에는 성남아트센터 ‘앙트레 콘서트’에서 관객과 만난다. ‘발레리나의 성장과정과 삶’이라는 주제로 토크 콘서트를 진행한다. 김주원, 이원국, ‘코리아유스발레스타즈’(단장 조미송) 발레 영재들이 함께 무대를 만든다. 베를린 국제 콩쿠르 은상을 수상한 김은서도 가세한다.
“요즘 10대 무용수들 재능이 대단해요. 그들이 제대로 배우고 기량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게 제 꿈이에요. 일단 어릴 때부터 무대에 자주 서는게 중요하죠.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이은원도 예원학교 재학 때 정동극장 공연 ‘성냥팔이 소녀’에 출연했어요.
그는 지방 대학교 무용과 강의 요청이 오면 흔쾌히 달려간다. 서울 프로 무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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