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서울 종로의 한 카페. 인터뷰를 대기 중인 엄정화(46)에게 한 팬이 사진을 들고 다가와 사인을 요청했다. 1997년 노래 ‘배반의 장미’로 활동할 당시 사진이었다.
“어머, 이게 언제야. 나 진짜 어렸다”
엄정화는 그 시절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놀람 섞인 웃음을 터뜨리며 사진을 한참이나 들여다봤다.
13일 개봉하는 영화 ‘미쓰 와이프’(강효진 감독)에서도 그의 연륜이 느껴진다. 우연히 마법에 걸려 아줌마로 살게되는 골드미스 변호사 연우역을 맡았다. 공무원 남편과 두 아이를 둔, 일상에 치인 아줌마다. ‘싱글즈’, ‘관능의 법칙’ 등에서 당당한 싱글 여성을 대변해온 그에게 밥풀 묻힌 셔츠와 펑퍼짐한 바지를 입은 아줌마역이 이제는 제법 잘 어울린다.
“연우라는 여자가 가족과 사랑에 대해 마음을 열어가는 모습이 공감갔어요. 저도 젊을때 일만하며 살았거든요. 주위를 둘러보지 못하고 조바심 냈고요. 가족과 일상을 지키는 엄마의 삶을 연기하면서 새로운 행복이 있구나 싶었죠.”
‘잘생기기만 한’ 남편 성환(송승헌)과 빚어내는 코미디 연기가 좋다. 엄정화는 “아이들 잤으니 자러가자”고 말하는 남편의 말에 기겁하고, “잘생긴 것도 싫으냐”는 말을 듣고는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코미디는 제가 좋아하는 장르에요. 억지로 쥐어짜면 재미없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스며들듯 연기할 때 웃긴 게 나와요.”
야망은 없지만 아내와 자식만 바라보고 사는 성환이와 같은 남편은 어떨까.
“서로 다정하게 사는 모습이 좋더라고요. 남자들이 저를 강하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남자에게 기대고 싶어하는 여자예요. 의지할 사람이 있는 결혼이 부러워요.”
하지만 동정의 시선을 우려해서인지 이내 “전 슬프지 않아요. 아직 삶은 끝나지 않았으니까요”라며 활짝 웃는다.
23년차 배우인 그는 지금도 악성 댓글에 상처받는다고. 나이 얘기를 꺼내면 “자꾸 그런 얘기(하면) 더 나쁘다”며 애교있게 항의한다.
“나이를 누가 피해갈 수 있겠어요. 나이 앞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죠. 하지만 세월을 따라 오랫동안 작품 해온 게 너무 좋고, 나이에 맞은 연기를 하게 돼서 너무 좋아요. 앞으로 맡을 역은 무궁무진해요. 계속 새로운 것을 꿈꿔요”
몇 년전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그는 “보험처럼 운동”하며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 쉴 때는 뉴욕, 호주로 여행을 다녀왔다. 새로운 에너지를
“처음 일 시작했을 때 서른 살 넘은 여배우가 거의 없었어요. 30대땐 마흔을 넘기고도 계속 영화를 할 수 있을까 고민했죠. 그런데 저를 보세요. 지금도 하는 게 기적이죠. 스스로 부끄럽지 않고 열정적으로 사는 모습이 많은 여배우에게 힘이 되겠죠.”
[이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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