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는 말년 자신이 스스로 허물을 벗었다면서 그 경지를 ‘불계공졸(不計工拙)’이라 일컬었다. 극단적으로 세련된 것 즉 기교와 가장 바보 같고 어수룩한 것을 굳이 따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잘되고 못되고를 계산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자평이다.
그로부터 120여년 뒤 조각가 우성 김종영(1915~1982)은 자신의 예술관을 ‘불각(不刻)’이라 명명한다. 돌과 나무를 새기는 조각가가 “굳이 새기지 않는다. 조각하지 않는 미가 최고의 미”라는 역설을 펼쳤다. 노장 사상에 뿌리를 둔 이 두 거장의 예술관은 바로 인위적인 것을 배제하고 자연 그대로를 추구한다. 이미 자연 속에 모든 아름다움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극도의 절제와 선비 정신을 추구한 추사 김정희와 우성 김종영의 전시가 서울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름 하여 ‘추사 김정희, 우성 김종영: 불계공졸(不計工拙)과 불각(不刻)의 시공’전이다. 추사와 우성의 2인전이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서양미술사 관점에서 우성의 작품을 분석하는 것이 학계의 주된 관점이었으며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모으는 것도 쉽지 않아 2인전이 성사되지 않았다고 우찬규 학고재갤러리 대표는 설명했다. 우성이 스스로 자신의 사표로 삼았던 김정희와의 전시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시공간을 초월한 두 거장의 대화에는 서예라는 공통분모가 자리잡고 있다. 일본 도쿄에서 유학하고 32년 동안 서울대 미대 강단에서 후학을 양성한 우성은 어린 시절 한학자인 아버지 밑에서 서예를 배웠다. 경남 창원의 부농에서 태어난 김종영은 “추사 글씨의 예술성은 리듬의 미보다 구조의 미에 있다. 내가 그를 세잔에 비교한 것은 그의 글씨를 대할 때마다 큐비즘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고 적었다. 추사는 김종영이 평소 흠모하고 글씨를 따라 썼던 작가다. 추사의 글씨는 내재된 힘으로 극도의 응축미를 선보였으며 김종영 작품 역시 군더더기 없는 단순 미학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 추상조각을 개척한 거장인 김종영이 추사의 글씨에서 어떤 영감을 얻고 또 자신의 세계를 구축했는지 비교해 볼 수 있다. 서양미술을 배우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우성과 글씨의 근본을 중국 왕희지 이전 고예(서한예서)에서 찾은 추사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동국 예술의전당 서예부장은 “추사와 우성의 예술은 일생에 걸쳐 붓으로 칼로, 서(書)와 각(刻)으로 역사전통과 서구현대가 교차해온 19, 20세기라는 시공에서 나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우리가 누구인지를 우주와 자연 앞에서 스스로 묻고 답한 성찰의 결정”이라고 평했다. 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은 “장르는 다르지만 미의 원리와 정신은 일맥상통한다. 20세기 한국미술사에서 추사의 계보를 잇는 작가가 바로 김종영”이라고 말했다. 추사의 글씨
※ 문의 = (02)720-1524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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