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불상 제작기술은 석굴암 본존불을 만든 통일신라시대 정점에 올랐다가 그후 신라가 멸망하고 고려로 접어들면서 급격히 퇴보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려 철불들을 보면 개성이 넘친다고 하나 실상 제작기법은 그 이전시대보다 현저히 떨어진다. 대신 고려시대엔 고승들의 사리를 안치한 승탑과 그들의 업적을 새긴 승탑비가 크게 유행한다. 참선을 통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선종사상이 도입되고 이를 호족세력들이 적극 후원하면서 당대 최고 공력이 불상 대신 승탑과 승탑비에 집중돼 수작들을 연거푸 쏟아냈다.
현재 경복궁 경내에 세워져 있는 국보 101호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은 그 가운데서도 걸작품으로 꼽힌다. 탑 전체에 불보살, 봉황, 신선, 가릉빈가(불경에 나오는 상상의 새) 등 온갖 화려한 장식과 무늬들이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 지붕돌 처마와 상층기단 갑석에 커튼을 친 것 같은 장막, 아치형 창문, 문짝 부분의 해와 초승달 등은 페르시아 형식이다.
이 탑이 늦어도 내년초부터 전면 해체보수된다. 국립문화재연구소측은 “정밀안전진단에 따른 해체복원 계획이 최근 문화재위원회를 통과함에 따라 안전하게 분리해 대전의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센터로 운반하는 방안을 수립하는 ‘해체준비설계’에 착수했다”며 “설계는 길어야 3개월내에 끝난다. 동절기를 피해 내년 2월쯤부터 본격적인 해체작업을 할것”이라고 밝혔다.
탑은 우리 문화재의 수난사를 대변한다. 일제강점기 원주에서 명동으로, 다시 일본으로 불법 반출됐다가 돌아와 경복궁에 자리를 잡았다. 한국전쟁때에는 포탄을 맞아 1만2000개 파편으로 깨졌다가 1958년 흩어진 조각을 찾아 일일이 붙이고 시멘트로 땜질했다. 2005년 중앙박물관이 경복궁을 떠나 용산으로 이전할 때 야외에 있던 석조문화재들을 모두 가져갔지만 이 탑만은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옮기는 과정에서 더 큰 손상을 입을 것으로 염려해서다.
탑의 손상도는 생각보다 훨씬 위태로웠다. 연구소의 안전진단 결과에 따르면 시멘트로 보수된 부분은 전체 부재의 10.6%에 달했다. 탑내부에 지지를 위한 철심도 41개가 박혔 있었고 철심의 부식도 우려스러운 수준이었다. 조각 부분의 박리(암석표면이 양파껍질처럼 깨져 떨어져나오는 현상)와 시멘트가 녹아서 발생한 표면 오염도 극심했다.
탑상태가 워낙 나빠 보전처리 완료는 2019년말께나 돼야 가능할 것으로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전망한다. 그러나 수리가 끝난 뒤 탑을 어디에 다시 쌓아야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어 앞으로 분란의 소지가 다분하다. 이 탑의 관리기관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돼 있다. 박물관측은 보다 많은 사람이 관람할 수 있어야 하며 또 탑의 항구적 보존을 위해서도 박물관 같은 실내 존치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편다. 박물관은 지난 2005년 당시 탑을 용산 전시관으로 가져오기 위해 특수시설을 갖춘 별도공간까지 마련해 뒀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불교계와 원주시 시민단체들은 “경주 석가탑이나 다보탑이 현장에 있듯 지광국사탑도 원래 장소로 가져오는 게 옳다”고 주장한다. 법천사지에는 2m 간격을 두고 탑과 지광국사탑비(국보 59호)가 쌍으로 놓여 있었는데 탑비 옆에 탑의 위치를 추정할 수 있는 터잡이돌이 현재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원주시는 15년째 이어져오고 있는 법천사지
[배한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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