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기획통’으로 불리는 김재원답게 답사도 남달랐다. 1780년 6월 23일 압록강을 건넌 연암처럼 음력 6월 하순에 압록강을 출발했고, 8월 9일 연암이 열하에 도착한 일정에 맞추어 저자 역시 음력 8월 10일경에 하북성 승덕시(열하)에 도착했다. 열하를 향하는 길은 3950㎞에 달했다. 촬영이 금지된 사찰과 묘당에서 경비원의 경고를 무시하고 중국어를 못 아아듣는 척하면서 사진을 찍다가 카메라를 몰수당할 뻔한 일도 있었다. 북진묘와 이제묘에서는 사진을 찍으려다 사나운 개에게 물어뜯길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그는 가급적 연암의 눈으로 중국 산하를 살펴보려 했다.
연암은 청나라 건륭제 시대를 바로 보지 못하고 춘추대의만 주장하던 조선왕조의 후진성에 안타까움을 느끼는가 하면, 중국 전역을 누비는 수레를 설명하며 조선에는 수레가 다닐 도로 하나 제대로 건설하지 못하는 벼슬아치들의 무능을 비판하기도 했다.
230년의 시간이 흘렀으나, 연암이 ‘열하일기’에 고발한 조선의 문제점은 오늘날 우리네 정치의 모습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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