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연극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이하 ‘한밤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오는 것은 배우도 무대의 디자인도 아닌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 그 자체였다.
모든 것이 최소화 된 무대 위 덧입혀진 유려한 영상은 ‘한밤개’의 공간을 풍성하게 만들었으며, 배우들의 몸과 소리를 통해 완성되는 사물들은 연극만이 줄 수 있는 재미를 배가케 해 준 것이다. 자본적인 문제로 인해 많은 이들이 기대했던 라이선스 무대를 가져올 수 없었지만, 도리어 이 같은 한계는 비움과 최첨단 기술을 조화케 하며 이른바 ‘무대 기술의 진화’의 시작을 알렸다.
자폐아 소년 크리스토퍼가 이웃집 개가 살해당한 것을 발견하고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벗어나 세상 밖으로 발을 디딘 자폐아 소년의 성장담을 다룬 ‘한밤개’는 마크 헤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2013년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되면서 로런스올리비에어워드 7관왕을 휩쓸고, 1024년 6월 토니어워드 5관왕에도 오르며 영미권 최고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 사진=천정환 기자 |
웨스트엔드 연극인 ‘한밤개’가 국내 초연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모았던 부분은 바로 무대였다.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한밤개’는 뭐니 뭐니 해도 화려한 영상과 무대기술로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웨스트엔드 무대를 국내로 옮겨오기에는 라이센스 가격이 지나치게 비쌌고, 결국 무대는 국내 제작진들에 의해 재창조될 수밖에 없었다.
정승호 무대 디자이너는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 열린 프레스콜에서 “지금 무대는 뭐가 없다. 미니멀한 것을 풍성하게 채워주는 것이 영상과 조명, 그리고 배우의 움직임이다. 영상을 잘못 쓰면 너무 달콤하고 강렬해서 정서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영상이 극의 정서를 잘 전달해주고 있다”며 “공연을 보다보면 영상 속 여러 줄의 라인들이 크리스토퍼에 공격하는 것처럼 떨어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크리스토퍼가 느끼는 세상을 표현한 것이다. 이를 위해 가방이나 모자에 센서를 달아 영상 속 선이 센서를 따라갈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무대를 만드는 또 다른 요소는 앙상들의 연기다. 앙상블들의 몸짓과 목소리를 통해 꽃병, 전자레인지, 공기청정기, ATM 기계, 서랍 등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김태형 연출가는 “생각보다도‘한밤개’의 무대가 컸다. 무대를 채우기 위해 자본이 필요했지만 자본의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화려한 무대장치를 사용하기보다 최대한 몸으로 때우기로 했다”며 “큰 무대에서 덜어내고 비워내고 그러면서 크리스토퍼의 외로움 표현하고자 했고, 연극적인 요소를 통해 크리스토퍼가 보는 세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주고자 했다. 크리스토퍼의 시선에서 ATM는 안에 사람이 있어 돈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무대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 사진=천정환 기자 |
그렇다면 웨스트엔드 공연의 무대와 국내 공연의 무대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커튼콜이 다르고 마지막 장면에 힘을 많이 썼다”고 운을 띄운 김태형 연출은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했다. 배우들을 많이 쓰고 싶었고, 불분명하다고 생각되는 메시지들을 확고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소설에는 있었지만 대본에는 없는 부분을 찾아내서 삽입하고 각색한 부분이 있다”며 “크리스토퍼는 자신만의 철학과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캐릭터이다. 이를 조금 더 쉽게 드러날 수 있도록 배우들과 대본정리를 했다. 이 같은 요소들이 원작과 다른 부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제작진에 의해 만들어진 무대 위에서 연기를 펼치는 크리스토퍼에게도 어려움은 있었다. 자폐아라는 캐릭터 연기가 어려운 지점도 있었지만, 대사 분량도 만만치 않게 많기 때문이다. 연기와 관련된 질문에 바로 “너무 힘들었다”고 대답한 전성우는 “이 친구는 1차원적인 말을 해서 자기 식으로 대화를 전개를 해 나가는 인물이다. 연결 고리들이 일반적이지 않아서 힘들어 처음에는 이 자체를 단순한 정보를 암기하려고 노력했고 다음으로는 상황을 읽기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 사진=쳔정환 기자 |
또 다른 크리스토퍼 려욱은 “대사가 이렇게 많은 극은 처음이다. 처음에는 나만 힘든가 생각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나무형과 성우가 힘들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의지가 됐다”며 “다 같이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 덕분에 많이 배웠다”고 이야기 했다.
한편 ‘한밤개’는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2016년 1월31일까지 공연된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