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내면 깊숙이 그는 자신이 정상이 아니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밤마다 죽은 어린이들이 등장하는 악몽을 꿨다. 종종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폭력의 충동이 들었으며, 축제 때 폭죽이라도 터지면 온 몸이 마비된 듯 겁에 질렸다. 일상 속 어떤 것에서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결국 그는 정신과를 찾았고, 의사는 정신안정에 도움을 주는 약을 처방했다.
며칠 후 약의 효능을 묻는 의사의 기대 어린 질문에 놀랍게도 그는 “약을 먹지 않았다”고 답했다. “약을 먹으면 악몽이 사라진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그건 내 친구들의 죽음을 헛되게 만드는 거예요. 전 베트남에서 죽은 친구들을 위해 살아 있는 기념비가 돼야 해요.”
트라우마는 환자가 상처 입은 과거에 묶여 현재를 제대로 살아갈 수 없게 만든다. 1970년대부터 트라우마 치료를 연구해온 세계적 권위의 의학박사이자 현 미국 보스턴 의과대학 교수인 저자 베셀 반 데어 콜크는 그간의 방대한 연구 과정과 결과를 이 책에서 집대성했다. 저자는 전쟁, 어린 시절의 학대와 성폭력, 가정불화 등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사람의 뇌와 신체에 일으키는 영향을 꾸준한 실험을 통해 연구한 결과 수많은 현대인이 호소하는 각종 장애와 이상행동이 근원적으로 트라우마와 연결돼있음을 밝혀냈다.
톰은 저자가 만난, 끔찍한 전쟁을 겪은 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는 무수한 제대 군인 중 하나였다. 어린 시절 성당에서 만난 신부로부터 지속적인 성추행을 당했지만 극심한 공포와 충격으로 인해 해당 기억을 수 년간 잊고 살던 청년 줄리언 역시 저자가 만난 대표적인 트라우마 환자다. 우연한 기회에 어릴 적 고통스런 기억 속 이미지 파편들을 떠올린 그는 피가 날 때까지 자기 몸을 할퀴며 공황발작에
저자는 단순한 약물처방을 통한 트라우마 치료에 문제를 제기하며 요가, 뉴로피드백(뇌파 조절), 연극 치료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한 치료법에 더해, 트라우마 발생 빈도가 높은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한 교육·복지 정책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오신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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