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은 없었고, 그는 한(恨)을 풀었다. 5수(修) 끝에 거머쥔 첫 오스카 트로피였다. 아카데미 영화상이 이 멀쑥한 남자를 호명하자 좌중에서 우레같은 함성이 쏟아졌다. 1994년부터 후보로 지명됐지만 오스카는 번번이 그를 외면했던 터. 그 질긴 악연을 22년 만에 청산한 리어나도 대카프리오(42)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조금 상기된 표정이었다.
“‘레버넌트’는 굉장히 훌륭한 촬영진과 제작진의 노력 덕분에 탄생한 작품입니다. 현장에서 보인 열정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을 따라갈 수 없지요. 배우로서 초월적인 경험을 하게 해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이날 이냐리투는 오스카 감독상을 받았다. 지난해 ‘버드맨’에 이어 2연패다.
28일(한국 시각 29일) 미국 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88회 아카데미 영화상의 주인공은 단연 리어나도 대카프리오였다. ‘길버트 그레이프’(1994)로 남우조연상 후보에, ‘애비에이터’(2005)와 ‘블러드 다이아몬드’(2007)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2014)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번번이 실패의 쓴잔만 마신 그다.
그래서일까. 소상소감을 듣던 한 여배우가 가만히 눈물 훔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케이트 윈슬렛(41)이었다. 그는 ‘타이타닉’(1997)에서 디캐프리와 함께 호흡을 맞춘 바 있다. 당시 오스카 11관왕을 차지했던 이 영화도 디캐프리오에게 만큼은 수상을 안겨주지 않았다.
디캐프리오는 수상 소감에서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에게 영광을 돌렸다. “청소년 시절 주거환경이 그다지 좋지 않은 이스트 로스앤젤레스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가 매일 세 시간씩 운전해 다른 지역 학교로 데려다주셨죠. 그녀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겁니다.” 일순간 좌중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자’는 디캐프리오의 배우 인생 통틀어 ‘필생의 역작’으로 기록될 법하다. 그 자신이 ‘초월적 경험’이라 밝힌 것처럼, ‘크리스터스3’(1991)로 데뷔한 이래 인생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며 평단의 격찬을 받아왔던 그다. 눈보라 휘몰아치는 캐나다 캘거리의 설원에서 맨 몸으로 강을 헤엄치고, 눈발을 굴러대며 휴 글래스의 처절한 복수극을 완벽히 연기해냈다.
한편 여우주연상도 이변없이 ‘룸’의 브리 라슨(27)에게 돌아갔다. 디캐프리오와 달리 이 젊은 여배우는 첫 오스카 후보 올라 수상까지 한 번에 거머쥐었다. 작품상은 저널리즘의 정수를 그린 ‘스포트라이트’(감독 토마스 맥카시‘에게 돌아갔고, 다관왕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타냈다. 조지 밀러 감독이 연출작인 ‘매드맥스’는 ‘의상상’ ‘분장상’ ’편집상’ ‘음향편집상’ ‘미술상’ ‘음향상’까지 한데 휩쓸어 ‘6관왕’이 됐다.
이병헌이 아시아 배우 최초로 시상식에 나선 외국어영화상은 헝가리 영화 ‘사울의 아들’에게 돌아갔다. 제68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에 이어 다시금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반면 조수미의 주제가상 수상은 불발됐다. ‘유스(Youth)’의 주제곡 ‘심플송’으로
‘오스카상’이라고도 불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은 미국 영화업자와 사회법인 영화예술 아카데미협회 미국 최대의 영화 시상식이다. 1929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88회를 맞았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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