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더 영화같기 때문일까. 실화로 빚어낸 영화들이 국내외를 강타하고 있다. 2월 28일(한국 시간 29일) 열린 제88회 아카데미 영화제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실화영화가 득세했다. 때마침 국내 극장가 또한 20세기 초가 배경인 ‘귀향’ ‘동주’가 흥행하고 있어 더 주목되는 바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실화 자체가 지닌 힘이 다른 소재보다 강할 수밖에 없다”며 “실제했던 인물과 사건만큼 스토리텔링에 설득력을 갖긴 힘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카데미, 실화 사랑
작품상과 각본상을 타낸 ‘스포트라이트’는 실화다. 카톨릭교회에서 수십 년에 걸쳐 자행된 아동 성추행 스캔들과 그것을 폭로한 보스턴글로브 탐사보도팀 이야기를 건조하되 완성도 있게 그려냈다.
감독상과 남우주연상, 촬영상을 한 데 거머쥔 ‘레버넌트’도 마찬가지. 19세기 서부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실존인물 휴 글래스의 분투기를 장엄하게 되살려냈다. 7년 간 가로세로 3.5m 넓이의 방에, 아들까지 낳고 기른 24세 여성의 비극을 그린 ‘룸’(여우주연상)도 그랬다.
이밖에 미 금융권 부패와 몰락 실화를 조명한 ‘빅쇼트’(각색상), 홀로코스트를 참사를 다룬 ‘사울의 아들’(외국어영화상)도 실화를 재해석한 경우다. 세계 최초 성전환 수술자인 에이나르 베게너의 삶을 비춘 ‘대니쉬걸’(남우조연상), 1957년 미소 냉전기를 배경으로, 적국 스파이를 변호한 제임스 도노반 이야기를 그린 ‘스파이브릿지’(남우조연상)도 그 범주 안에 속한다. 영화제 수상을 휩쓴 일곱 작품이 죄다 실화였던 셈이다.
◆실화는 힘이 세다
영화사(史)는 태초부터 실화가 있었다. 뤼미에르 형제가 연출한 최초 영화 ‘기차의 도착’(1896)이 그렇다. 굴직한 역사적 사건이나 유명 인물의 삶은 전 세계를 막론하고 단골 영화 재료로 활용됐다. 요즘엔 비화나 일반인 삶까지 다뤄지는 추세다.
실화영화가 강세인 이유는 뭘까. 생각보다 단순한데, 관객의 관심을 끌기에 이만한 소재도 없기 때문이다. 한바탕 사회에 충격을 안긴 사건이나 인물은 대중의 뇌리에서 좀체 잊혀지지 않는다. 그 기억을 되살려내는 것만으로 커다란 홍보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물론 관객은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걸 보러 가진 않는다. 감독의 시선 아래 해당 실화가 어떻게 해석될 지 보러 간다. 실제했던 사건과 인물을 스크린에 옮겨놓는 과정에서 ‘연출자의 주관’은 필히 가미되기 마련이다. 관객은 그 ‘감독의 관점’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실화영화를 택하는 것이다. 이따금 실화영화가 사실 왜곡과 명예 훼손 논란에 휩싸이는 이유기도 하다. 올해 아카데미 수상작들은 그런 감독 나름의 관점이 널리 승인된 경우다.
◆국내도 예외없네
국내에서도 실화영화는 강세다. 역사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조심스레 드러냈고, 절절한 울림을 주고 있다.
2월 24일 개봉한 ‘귀향’(감독 조정래)은 ‘3.1절’인 1일에만 42만 관객을 끌어모았다. 개봉 5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더니, 누적 170만5240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을 달성해 ‘귀향 신드롬’을 이어가는 중이다.
2월 17일 개봉한 ‘동주’(감독 이준익) 역시 누적 관객 75만2217명(1일 박스오피스 4위)을 달성해 조용한 흥행을 구가하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실화영화로, 한쪽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라는 시대적 아픔를 불러들였고, 다른 한쪽은 그 상처를 공유하며 비극적 생애를 맞은 시인 윤동주를 되살려냈다.
‘귀향’은 조 감독이 2002년 ‘나눔의 집’(생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후원시설) 봉사활동으로 만나게 된 강일출 할머니의 실화를 써내려 간 작품이다. ‘동주’ 또한 시인 윤동주(1917~1945)의 삶을 국내 영화로는 처음 스크린에 구현해냈다. 비극적 역사와 그 아래 살아가야 한 실존인물을 한데 불러냈다는 점에서 커다란 화제가 된 두 작품은 대중의 뜨거운 관심과 지지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지난해 ‘암살’(2015)이 애국심 마케팅 등 상업주의 요소를 한데 가미해 그 시대에 관한 흥미를 키워놨다면, 올 초 ‘귀향’ ‘동주’ 등 실화영화를 통해 ‘사회적 메시지’까지 더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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