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라는 것은 과거와 현재를 부수어 버리고 하는 것이다. 하늘과 땅을 내 보자기 속에 싸서 동여매 옆구리에 차는 것이다. 모든 허울과 장벽, 제한을 깨 부수는 게 미술이다.”
한국 수묵 추상의 거목 산정(山丁) 서세옥(徐世鈺·87) 화백의 말이다. 그는 “미술은 말이나 문자로 절대 설명할 수 없는 분야”라고 말하면서도 반세기 넘게 천착한 화론에 대해 이렇게 말을 꺼냈다. 국내 화단에 독보적인 위상을 가진 그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서 개인전을 연다. 화랑에서 개인전은 연 것은 무려 20년 만이다. 그간 썼던 전시 서문이나 작가 노트에서 발췌한 어록 80편을 수록한 ‘산정어록’도 냈다.
“공자 어록 중에 그림에 관해 이야기를 한 것이 있어요. 그림이라는 것은 흰 것이 있는 바닥에서 시작된다고. 흰 바닥이 그림보다 먼저 있다는 얘기죠. 그림을 그리는 종이나 비단, 캔버스가 있고 나서 그림이 있다는 말은 위대한 모든 것의 탄생은 탄생하기 이전부터 있다는 얘기죠. 내가 어머니 탯줄을 끊고 나오는 건데 그 어머니 탯줄 이전에 내가 있다. 그것을 생각하라는 것이죠.”
형상보다는 본질을 좇으라는 공자의 화론은 화백의 미학관이자 철학관이 됐다. 1929년 대구 항일 투사 후손으로 태어난 그는 민족의 정체성과 왜색 청산에 팔을 걷어붙였다. 1955년부터 1995년까지 40년간 서울대 동양화과 교수를 역임하며, 조선 문인화에 기초한 수묵의 혁신과 현대화에 전력투구했다. 이것이 서울대 동양화과 전통이자 특징으로 면면이 이어져 오고 있다.
2012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고 현재 서울대 미대 명예교수인 그는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에 100점을 기증했고 이 특별전이 지난해 서울관에서 열리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추상이지만 인간의 다양한 형태에 기초하고 있다. 전시장은 1990년대 작품부터 근작까지 인간 시리즈 21점이 걸려 있다. “나는 인간 형상을 다각적으로 표현해요. 외톨박이가 있고, 함께 울고 웃는 사람이 있죠. 어머니가 아이를 품고 있는 모자상도, 어깨동무를 하거나, 서로 손잡고 춤추면서 환호하는 인간도 있어요. 수많은 인류의 희로애락을 표현한 것이죠.” 전시 평론은 2013년 영어로 된 한국 현대미술 전문서 ‘한국의 현대미술-단색화와 방법의 긴급성’을 출간했던 조앤기 미국 미시간대 미술사학과 교수가 썼다. 먹(墨)으로 먹을 넘어섰다는 평가도 더했다.
서세옥은 수묵의 위대성을 믿는 작가다. 지금은 서양화가 맹위를 떨치고 있고, 유화를 서구에서 발명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의 설명은 다르다. “중국 당나라에서 유화 기법을 개발했고 신라 시대 솔거도 유화로 벽화를 그렸어요.”
캔버스 위에 유화로 그리는 서양화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종이에 먹으로 그리는 그림을 동양화 혹은 한국화라 부른다. 화백이 서울대 미대를 다닐 때만 해도 회화1과, 회화2과로 불렸었으나 미술 평론가 이구열 씨의 지적에 따라 동양화를 한국화로 부르게 됐다. “일본이 일본화라고 주장하고 나서는데 우리는 왜 한국화라고 못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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