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1년 전 28일 대한민국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인물 중 한 사람이 태어났다. 바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1545~1598).
임진왜란 당시 열세에도 불구하고 일본군과의 23번의 전투에서 잇달아 승리하며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했다. 특히 한국 전쟁사의 전설과도 같은 명량대첩(1597)에선 12척의 배로 25배가 되는 330척의 왜선을 무찌르며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우리에게 이순신 장군은 재능을 타고난 천재, 완벽한 전략가, 모두를 포용하는 리더로 꼽히곤 한다. 그러나 사실 그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다.
충무공 탄신일을 맞아 이순신 장군이 친필로 적어 내려간 일기 속 ‘인간 이순신’의 새로운 모습을 만나보자.
◆이순신은 걱정형 인간
난중일기 속 이순신은 자신의 출근 시간을 ‘새벽’ ‘동틀 때’ ‘닭이 울 때’ 등이라고 적었다. 당시 관료들의 출퇴근 시간은 오전 5시~7시에 해당하는 묘시(卯時)였다고 한다.
난중일기 속 이순신은 온갖 걱정으로 잠을 자지 못해 새벽까지 뒤척이다 겨우 눈을 붙이거나 혹은 새벽에 일어나 앉아 있거나 새벽부터 활동했던 모습이 나온다. 그래서일까. 난중일기 속에 이순신은 ‘피곤하다, 잠시 눈을 붙였다’와 같은 말을 적었다.
“비가 계속 내렸다. 몸이 아주 피곤해 잠깐(半餉) 낮잠(晝睡)을 잤다”-1월 20일(병신년)
“맑았다. 아침을 먹었다. 몸이 피곤했다. 잠시 자고 일어났다(初罷)”-3월 12일(병신년)
◆어부가 된 이순신
이순신에게 물고기는 생명과도 같은 존재였다. 당시 군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전쟁터에서 물고기는 수군과 이순신의 유일무이한 식량이었다. 이순신은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 수군들과 함께 스스로 물고기를 잡았다. 남은 물고기는 팔기도 했다. 이순신은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한 장군이었다. 난중일기엔 이순신이 직접 잡고 판매한 물고기들의 숫자들이 꼼꼼하게 기록돼 있다.
“저녁에 벽어(碧魚) 13,240 두름(두름은 물고기를 한 줄에 10마리씩 두 줄로 엮어 20마리씩 묶어놓은 단위)으로 곡식을 사는 일로 이종호가 받아 갔다”-11월 21일(을미년)
“황득중과 오수 등이 청어(靑魚) 7000여 두름을 실어 왔다. 그래서 김희방의 곡식 판매 배에 계산해 주었다-12월 4일(을미년)
◆이순신과 형제들
이순신은 4남 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맏형인 이희신(李羲臣)은 1587년 52세로 사망했고 둘째 형님 이요신(李堯臣)은 1580년 38세로 사망했다. 형님들을 먼저 떠나보낸 후 집안의 가장이 된 이순신은 형님들의 기일을 기리는 일기를 적었고, 업무를 보지 않았다.
“둘째 형님의 제삿날이라 좌기(벼슬에 있는 이가 정무를 처리하는 것)하지 않았다. 사복시에서 받아와 키운 말을 올려 보냈다” -1월 23일(임진년)
“맏형님의 제삿날이라 좌기하지 않았다. 순찰사의 답장을 읽었다”-1월 24일(임진년)
◆효자 이순신
전쟁 속 힘든 상황에서도 이순신은 어머니에 대한 걱정과 근심을 놓지 않았다. 특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수군들을 이끌어야 했던 이순신의 경우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아 늙은 어머니가 행여나 아프실까 염려하는 마음을 표현하곤 했다.
“노를 바삐 저어 어머니 앞에 이르니 흰 머리카락이 부스스하신데, 나를 보고 놀라 일어나셨다. 기력은 숨이 곧 끊어질 듯하여 아침저녁을 보전하시기 어렵겠다. 눈물을 머금고 서로 붙들고 밤새 위안하며 기쁘게 해드리면서 그 마음을 풀어드렸다”-8월 12일(병자년)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나 식사하는 것이 전보다 줄었다고 하니 걱정이 되어 눈물이 난다”-5월 18일(갑신년)
◆이순신의 휴가
1592년 1월 1일부터 기록된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은 정식 공무를 보지 않는 나라의 제삿날에도 쉼 없이 일했다. 이순신은 공무를 처리하고, 활을 쏘고, 현장을 점검을 하는 것이 일상과도 같았다. 1월 내내 숨 쉴 틈 없이 전쟁을 준비하던 이순신은 2월 1일 잠깐의 휴식을 즐겼다.
“안개비(煙雨)가 잠깐 부슬부슬 내렸다. 늦게 갰다. 선창으로 나가 쓸 만한 판자를 골랐다. 때마침 수장 안에 조어가 구름처럼 모였다. 그물을 쳤다. 2천여 마리를 잡았다. 장관이었다. 그대로 전선(戰船)에 앉아, 우후와 술을 마셨다. 더불어 새 봄의 경치를 구경했다”-2월 1일(임진년)
◆미래가 궁금했던 장군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미래는 이순신 장군도 궁금해 하는 것이었다. 전쟁에 대한 걱정, 농사에 대한 걱정 등으로 잠 못 이뤘던 그는 점을 봐서 위안을 얻기도 했다.
“이른 아침 적이
“농사에 아주 흡족하다. 점을 쳐보니, 풍년이 들 것 같다”-5월 17일(임진년)
[디지털뉴스국 김지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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