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희 바이올리니스트. <한주형기자> |
전 세계 음악영재들이 모이는 221년 전통의 파리국립고등음악원을 공동수석으로 졸업 후 이탈리아 몬카르리에 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하며 독주자로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던 이상희에게 바이올린은 기부를 위한 도구다. 12년째 자비로 연주회를 열고 수익금 전액을 백신을 만들어 개발도상국에 지원하는 유엔 산하 국제백신연구소(IVI)에 기부해왔다. 지난해까지 8800만원의 수익을 거둔 그에게 ‘1억 달성’을 목전에 둔 이달 공연은 더 특별하다. 27일 연주회에 앞서 이상희를 지난 23일 필동 매일경제 사옥에서 만났다.
“제가 어릴 적 봉제인형 공장을 하시던 아버지께선 어린이날, 성탄절마다 절 데리고 고아원에 가서 인형을 나눠주며 봉사를 하셨죠. 누굴 돕는 건 그때부터 제게 일상이 된 것 같아요.” 선화예중고를 거쳐 16살에 시작한 파리 유학시절 음악원 동창들과 ‘앙상블 유니송’을 꾸려 한인입양아단체를 돕는 자선 공연을 연 게 20년 기부인생의 출발이다. “안 그럴 것 같죠? 그런데 생각보다 착한 사람들이 참 많더군요.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늘에서 받은 재능과 부모님 도움 덕에 우리가 음악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설득하자 순식간에 12명이 모여들었죠.”
2005년 귀국 후에는 자신의 팬을 자처하는 조안 리 IVI 고문(여성신문 이사장)과의 인연으로 IVI를 돕기 위한 독주회를 열었다. “첫회 때만 해도 이렇게 꾸준히 이어질 줄 상상도 못했습니다.” 2005년 5명의 친구·제자 음악인들로 꾸려진 ‘이상희와 프렌즈’와 조촐하게 열렸던 자선연주회는 올해 68명 인원이 참여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프로 외에도 그저 바이올린이 좋아 매년 수백만원씩 쾌척하는 일흔 살 기업가부터 연주자의 꿈을 꾸는 초등학생 아이들까지, 무대에 서는 멤버 면면도 각양각색이다.
팬층이 얇은 클래식시장에서 매년 600석을 매진시키기란 쉽지 않기에 늘 도전의 연속이다. “남편을 잘 만났어요. 대출도 받아야 하고 어려울 때도 많지만 단 한번도 응원을 멈추지 않았죠. 음악 문외한이라 연주회 올 때마다 졸기 일쑤인 게 흠이지만요, 하하.” 8회 연주회 직전 유산한 뱃속 아이를 품은 채 애써 참고 웃으며 무대서 연주해야 했던 아픈 기억도 있다. “그땐 이렇게까지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싶었어요. 하지만 다음해 공연에선 지금 딸아이를 밴 채 만삭으로 무대에 섰죠. 행복한 보상이에요.”
중앙대·상명대서 제자를 가르치며 연주를 병행하는 그는 틈틈이 전국 교도소, 병원, 미혼모아동시
[오신혜 기자 / 사진 =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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