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만에 뉴욕으로 돌아갔다. 50년 전 처음 밟았던 그 땅으로. 이번에는 나를 위한 이주가 아니었다. 딸을 위한 결단이었다. 그러나 2016년 뉴욕에서 보는 미국과 한국, 그 어디도 ‘행복의 나라’는 없어 보였다”
‘물 좀 주소’ ‘행복의 나라로’로 유명한 한국 포크락의 대부 한대수 씨(68)에게 근황을 묻자 수화기 넘어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예순이 다된 나이에 얻은 귀하디 귀한 늦둥이 딸아이를 위해 인생 제 2막을 결심한 한대수씨는 지난 9월 뉴욕에 다시 둥지를 틀었다.
태평양을 건던 그와 단독으로 전화인터뷰를 하게된 발단은 그가 펴낸 책의 재출간때문이었다. 절판됐던 ‘영원한 록의 신화 비틀스 vs 살아있는 포크의 전설 밥 딜런’은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다시 빛을 보게 됐다. 한씨는 “11년 전 뉴욕도서관에서 1년동안 살다시피하며 써낸 책”이라며 “비틀스와 밥 딜런의 얘기를 씀으로써 지금 땀방울이 보이지 않는 음악가·연주가들에게 그 당시의 훌륭함을 전달하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락앤롤을 하는 입장으로 밥 딜런의 수상은 상당히 기쁘지만, 문학계의 반발도 나는 맞는 말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시 뉴욕으로 이민간 사연이 궁금했다. 한 씨는 “딸 양호(10)를 학교에 보냈더니, 공부가 너무 어렵고 또래끼리의 경쟁이 치열하더라. 아이들이 아이가 될 수 없는 환경이여서 고민하고 고민하다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겠다 싶은 나의 제2의 고향 ‘뉴욕’으로 왔다. 나는 미국에 온 게 아니라 뉴욕으로 온 것”이라고 운을 뗐다.
그가 12년 만에 바라본 뉴욕은 어땠을까? “젊은 백인 노숙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 과거 노숙자라면 늙은 흑인이나 히스패닉이었는데...완전히 바뀌어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한씨는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이유가 이같은 변화상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브루클린쪽에만 나가도 샤리(인도 전통 의상)가 물결친다고 할 정도”라며 “백인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여실히 느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트럼프가 내놓은 이민정책 재조정과 ‘백인들의 파워를 회복하자’는 선거캠페인이 그들에게 크게 와닿을 수 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피 튀기는 경쟁이 뉴욕의 현실이다. 딸 교육 위해 왔지만 너무 늙어버린 내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라며 착잡함을 드러냈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가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것을 아냐는 질문에 한씨는 “지금 대한민국은 굉장한 위기에 놓여있다. 북한은 핵개발을 하고 한국은 부패에 빠져있다. 말 그대로 ‘슬픈 한반도’”라며 “12년 동안 나도 공연하고 돈을 못받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그때 느꼈지. ‘공정한 사회가 아니구나’라고.” 회상했다. 그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는 이기심으로 법을 넘나드는 행동들이 이런 큰 일을 터뜨리지 않았나 싶다”며 “회오리 바람은 지나가지만 앞으로 얼마나 정직하고 정당한 사회를 만드느냐를 고민해야 한다. 이게 큰 숙제”라고 강조했다.
“매일 아이 학교 바래다 주고, 데리고 오고, 같이 숙제해주는 게 일과”라며 “아이가 대학에 갈 때까지 이렇게 하루, 한달, 일년을 보낼 듯 하다”는 한씨는 “내년 70살 생일잔치를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각각 한번씩 공연하는 것으로 치르고
1시간여가랑 통화말미에 그는 팬들에게 작별인사를 남겼다. “나는 뉴욕에서 고독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이 그립습니다. 사랑합니다, 여러분. PEACE”
[김명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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