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간 엎치락뒤치락 하던 고(故) 천경자 화백(1924~2015)의 ‘미인도’ 위작 스캔들이 종지부를 찍었다.
검찰이 19일 예상을 깨고 “미인도는 위작이 아닌 진품이 확실하다”는 최종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10월 프랑스 ‘뤼미에르 테크놀로지’ 감정팀이 검찰에 건넨 ‘위작’ 결론과 배치되는 것이자 생전 작가의 주장과도 엇갈리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배용원 부장검사)는 이날 천 화백의 차녀인 김정희(62)씨가 “미인도가 가짜임에도 진품이라고 주장한다”며 고소·고발한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5명을 무혐의 처분하고 수사를 종결했다고 19일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 전 학예실장 1명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이 진품이라고 판단한 세가지 근거는 명백한 소장 이력과 진품 13점에서 동일하게 발견된 석채와 두터운 덧칠 등 제작기법, 미인도(1977년작)의 밑그림이 천경자 화백이 둘째 딸을 모델로 그린 1976년작과 유사한 점이다. 미인도의 원소장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사건을 일으킨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확인됐다. 검찰에 따르면 1977년 천 화백이 중앙정보부 간부에게 미인도를 비롯한 그림 2점을 선물했고 이 간부의 처가 대학 동문인 김재규 부장의 처에게 미인도를 선물했다. 이어 김 부장은 1980년 5월 당시 신군부 계엄사령부 산하 기부재산처리위원회에 미인도를 헌납했으며 다시 재무부와 문화공보부를 거쳐 국립현대미술관에 최종 이관됐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또 여러 차례 두텁게 덧칠 작업을 하고 희귀하고 값비싼 ‘석채’ 안료를 미인도에 사용한 점 등도 위작자의 통상적인 제작 방법과는 다른 점이라고 검찰은 강조했다. 육안으로는 잘 관찰되지 않는 압인선(날카로운 필기구 등으로 사물의 외곽선을 그린 자국)이 ‘꽃잎’ ‘나비’ 등 천 화백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미인도에서 나타나는 점도 주요 근거로 꼽았다.
검찰은 지난 5월부터 고소인과 위작 주장자 권 씨등 핵심 참고인 조사를 벌였으며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에 대한 압수수색도 병행했다. 조사 과정에서 국과수와 KAIST에 DNA·필적감정 분석은 물론 미인도 밑그림·안료와 컴퓨터영상에 대한 분석 등 과학감정도 의뢰했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감정팀의 ‘위작’ 결론이 담긴 보고서와 관련해서는 “프랑스 감정팀이 당초 홍보한 내용과 달리 심층적인 단층분석방법이 제시되지 않았고, 또 그 감정팀의 계산식을 진품에 대입한 결과 진품 확률이 4%에 불과했다”며 신뢰에 의문을 제기했다. 국내 전문가의 안목감정에서도 진품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김씨와 피고소인측, 미술계 전문가들로부터 추천을 받아 선정된 9명의 감정위원 대부분은 석채 사용과 두터운 덧칠, 붓터치, 선의 묘사, 밑그림 위에 수정한 흔적 등을 토대로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쪽에 손을 들어줬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1991년 이래 25년간 지속된 대표적인 미술품 위작 논란 사건임을 고려해 미술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청취하고 동원 가능한 한 거의 모든 감정방법을 동원해 진실 규명에 노력했다”고 밝혔다.
잇단 위작 사건으로 신음하던 미술계는 안도하는 분위기다.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는 “그간 과거자료들로 미인도가 진품임을 믿고 있었다”며 “담담하다. 기뻐할 것은 없을 것 같다”고 입장을 밝혔다. 감정에 참여한 박우홍 화랑협회장은 “프랑스 감정팀 결론과 위조범 진술로 다소 혼란스럽기는 했지만 미술계는 그간 진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고 밝혔다. 다만 미국에 거주하는 천 화백의 차녀 김정희(62) 씨는 “검찰 발표 내용이 너무 황당하다”고 반발했다. 김 씨를 변호하는 배금자 변호사는 “항고도 하고, 재정신청도 하겠다. 동시에 대한민국 정부와 관련 개인들을 상대로 민사소송도 하겠다”며 추가 법적 대응에 나설 계획임을 밝혔다. 미술관 등 주류
[이향휘 기자 / 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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