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정고무신 사건 조사 착수 브리핑하는 강정원 문체부 대변인 [사진=MBN] |
인기만화 '검정고무신'의 작가가 저작권 소송중 세상을 등지면서, 정부가 특별조사팀을 꾸려 해당 계약의 위법 여부를 조사키로 했습니다.
문화콘텐츠 산업의 불공정 관행에 대한 지적이 계속되자, 문화체육관광부는 그제(30일) 부처 내 특별조사팀을 꾸려 '검정고무신' 고(故) 이우영 작가가 생전에 출판·캐릭터 업체와 맺은 계약이 예술인권리보장법에 위반되는지 전면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검정고무신'의 공동 작가이자 고 이우영 작가의 동생인 이우진 작가가 지난달 27일 MBN과 함께 한 인터뷰를 자세하게 풀겠습니다. 계약서 원본 내용도 살펴 보겠습니다.
사실 관계 여부가 법원 판결로 가려질 예정인 가운데, 문제의 중심에 선 출판업체인 형설앤의 대표와 관계자는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아 관련 입장을 담지 못했습니다.
↑ 고 이우영 작가 개인 유튜브 채널 [사진=유튜브 Korean cartoonist 검정고무신 작가 이우영] |
유족 측 김성주 변호사는 검정고무신으로 77개 이상의 저작물 이용 '사업화'가 진행된 것으로 파악되는 가운데, 이 사업화와 관련해 고 이우영 작가가 수익 배분 대가로 받은 금액이 단 1200만 원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된다고 말했습니다.
근거는 지난 2007년부터 약 15년에 걸쳐 고 이우영 작가의 통장에 지급된 내역입니다.
김성주 변호사는 "어떤 사업화는 얼마만큼 분배율에 따라 지급했고 어떤 사업은 지급이 안 된 것인지 지금까지도 두 형제 작가가 사업자 측으로부터 구체적인 설명이나 정확한 정산 내역을 받은 바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한 예로, 지난 2020년과 2022년 두 차례에 걸쳐 극장판으로 개봉된 검정고무신도 사업화 77개에 포함된 항목입니다. 작가 측은 극장판에 대해서도 사업화가 이뤄진다고 미리 설명한다거나 조건에 대해 협의하고 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일절 없었다고 말합니다.
↑ 극장판 검정고무신: 즐거운 나의 집 예고편 [사진=새한프로덕션] |
앞서 극장판 검정고무신은 기존의 두 형제 작품과는 다른 불안정한 작화로 관람객들의 악평을 들은 바 있는데요.
두 작가는 이러한 상황이었기에 전혀 개입할 수도, 작업을 할 수도 없었다는 입장입니다. 수익 배분과 관련해 이우진 작가는 "8만 원, 10만 원 이런 식으로 가끔 들어오기만 하는데 그게 그것인지 전혀 알 수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 MBN과 인터뷰하는 이우진 작가와 이우진 작가의 변호사 김성주 [사진=MBN] |
형설앤과 2008년 설정한 사업권설정계약서에 따르면 작가는 '저작물 정산 및 서비스 정보의 열람'이 가능하고 사업체는 열람에 '적극 협조'하게 돼있습니다. 하지만 작가 측은 지켜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우진 작가는 "이 모 스토리 작가도 계약을 수정하자고 계속 항변하고 있었다"며 "그런데 형설앤으로부터 '작가가 너무 돈 밝히는 거 아니냐, 너희들이 사업화되는 과정 알아서 뭐해?'라는 면박을 자주 들어야 했고 자존감이 떨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이 작가는 "대표뿐 아니라 직원들도 '작가가 알아서 뭐해요? 우리가 잘할 텐데'라는 말을 듣고 이우영 작가가 며칠 밤을 못 잤고 그게 시작이었다"며 "그 감정은 황당한 정도도 아니다"라고 덧붙이고는 헛웃음을 지었습니다.
생계 유지를 위해 고 이우영 작가는 기성 작가도 참여할 수 있는 공모전에 심사위원은 커녕 신인으로 지원해 경쟁해야 했습니다. 이우진 작가도 법적인 소송 중 책 출간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처음으로 막노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사업체로부터 소송을 당한 뒤 건강에는 적신호가 왔습니다. 이우진 작가는 "형은 스트레스로 귀에 이상이 생겨 오른쪽으로 걷고 싶은데 왼쪽으로 걷는 병을 가졌고, 저 같은 경우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췌장에 문제가 생겨 당뇨병 환자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 만화가 데뷔 전 자취할 당시 형 고 이우영 작가(오른쪽)와 동생 이우진 작가(왼쪽). 19살, 21살 추정. [사진=이우진 작가] |
고 이우영 작가가 검정고무신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92년입니다. 이우영 작가가 연재하자마자 군대 영장이 나와 동생 이우진 작가가 바통을 이어받았고, 그때부터 형제는 책 단행본과 만화잡지 '소년챔프'에 연재하며 국내 최장수 연재 기록(45권)을 세워갔습니다.
형제에게 그만큼 검정고무신은 남다른 작품입니다. 이우진 작가는 "마감 즈음 되면 아버지께서 먹칠 같이 해주시고 지금 없는 시스템인데 스크린톤이라고 음영을 맞추는 필름지도 밤새 가족이 같이 붙이며 매달렸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는 "저희의 인생을 바치고 새로운 캐릭터를 많이 탄생시킨 되게 소중한 작품"이라며 "뭐라고 표현을 못할 정도로 소중한 작품"이라 말했습니다.
하지만, 고 이우영 작가는 허가 없는 개별 창작 활동을 이유로 고소당했습니다.
이우진 작가는 "너무 황당한 것이 '이우영, 이우진'만 검색하면 나오는 동명이인의 수많은 책들도 다 저희 두 사람이 저작권 침해했다고 (형설앤이) 고소해버렸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이렇게 준비를 안 하고 고소할 수도 있나 싶어 황당했다"고 말했습니다.
두 작가의 모친도 고소 당했습니다. 김성주 변호사는 "모친이 운영하는 체험농장에서 '아이들이 농장 방문할 때 만화를 보면 좋겠다'고 해 2005년 KBS에서 방영한 검정고무신 애니메이션 DVD를 틀었는데 저작권법 침해라고 고소 당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모친을 상대로 형사·민사 소송이 모두 걸린 건데, 형사 고소는 '불기소'로 결과가 나왔고 민사 법원 심리는 4년 가까이 진행 중입니다. 이우진 작가는 "형설앤 대표가 이우영 작가와 통화 중 '너희 부모까지 고소할 것'이라 협박한 녹취도 갖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출판 업체는 이우영 작가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물론, 이우진 작가를 상대로 원고료 반환 소송도 제기해뒀습니다. 원고료 반환 소송에서는 2심에서 이우진 작가가 승소했으며, 상대 측에서 상고해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 검정고무신 캐릭터 활용해 형설앤과 롯데마트 콜라보한 모습 [사진=유튜브 Korean cartoonist 검정고무신 작가 이우영] |
고 이우영 작가가 큰 회의감을 느낀 결정적인 계기 중 하나는 롯데마트와 형설앤의 콜라보입니다. 마트를 찾은 이우영 작가가 제작한 영상을 보면 '너희의 가치가 고작 5만 6,700원이니'라는 글씨가 나타나고 우는 기영이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이우진 작가는 "캐릭터 상품이 나오면 작가와 협의 하에 나와야 한다고 돼있는데, 우리를 완전 배제하고 무시하고 상품이 나올 때마다 기뻐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저희 가족은 무너졌고 이우영 작가도 더한 고통과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김성주 변호사는 "사업자를 통하지 않고 검정고무신 창작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소송당한 작가들은 창작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며 "반면 사업자 측은 소송이 계속되는 중에도 애니메이션, 극장판, 롯데마트 등 사업화를 계속 확장해나갔고 작가들이 지켜보는 과정에서 느꼈을 좌절감과 상실감, 절망감은 상상하기도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그럼 실제 출판업체 형설앤과 두 작가 사이의 계약서에 대체 어떤 내용이 담겨 있었던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2007년부터 2010년 사이 형제와 형설앤 사이에서 체결된 사업권 설정계약서는 총 3건, 손해배상청구권 등 양도각서는 총 2건입니다.
사업권 설정계약서를 보면 형설앤이 지정한 업체에서 모든 사업을 진행하고 독점적인 권리도 형설앤이 위임하도록 돼있습니다.
다만, 애니메이션을 제외한 이차적 사용으로 파생된 수익의 경우 제반비용 및 대행수수료 30%를 제외한 순수익을 지분율에 따라 공평하게 분배하도록 돼 있습니다. 때문에 제반비용을 어디까지 해석할 수 있는지, 투명하게 공개했는지 확인이 필요해 보입니다.
아울러 작가 측은 사업의 수익은 '협의하여 분배'한다거나, 정산 및 서비스를 작가가 열람할 수 있고 사업체는 '적극 협조'한다는 부분, 그리고 어느 일방이 계약 내용을 변경하고자 할 경우 '서로 협의하여 결정한다' 등의 문구가 지켜지지 않았다는 입장입니다.
이 가운데 형설앤은 사업권 설정계약서 이후 추가로 손해배상권 등 양도각서를 체결하면서 이른바 '독소조항'을 넣어뒀습니다.
양도각서에 '일체의 작품활동과 모든 사업의 권리를 양도함에 동의'하며 '위반 시 그에 따른 손해배상 및 법적 처벌을 감수하고 계약금의 3배 위약금 지불을 약속한다'는 문구가 들어간 건데요. 출판업체가 추후 법적 분쟁에 대비한 모습이 읽힙니다.
이에 업계에서는 저작재산권을 영구히 양도하고 이에 따른 손해배상 조항까지 포함한 계약이 과하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김성주 변호사는 "무분별하게 포괄적으로 저작재산권을 양도하는 형는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구체적인 행사 범위를 협의하도록 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며 "현행 저작권법상으로는 저작재산권 양도 제한을 두거나 별도 절차를 규정
원저작권자를 위한 최소한의 보호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한편, 이우진 작가는 향후 작품활동과 관련해 "검정고무신은 정의가 살아있기 때문에 저를 통해 계속 나올 것"이라며 "이우영 작가와 저와의 추억을 검정고무신의 새로운 이야기들로 계속 그려갈 생각"이라 말했습니다.
[ 김문영 기자 kim.moonyoung@mbn.co.kr ]